| <colbgcolor=#000038><colcolor=#fff> 헨리 맥마흔 Henry McMahon GCMG, GCVO, KCIE, CSI, KStJ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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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빈센트 아서 헨리 맥마흔 경 Sir Vincent Arthur Henry McMahon | |
| 출생 | 1862년 11월 28일 | |
| 인도 제국 심라 | ||
| 사망 | 1949년 12월 29일 (향년 87세) | |
| 영국 그레이터런던 첼시 캐도건 호텔 | ||
| 국적 | | |
| 학력 | 헤일베리 칼리지 영국 육군사관학교 | |
| 복무 | 영국 육군 (1883~1903) | |
| 최종 계급 | 중령[1] | |
1. 개요
영국의 군인, 외교관.2. 생애
인도제국 심라에서 찰스 알렉산더 맥마흔의 아들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왕립리버풀연대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인도 제국군 참모로 복무하며 펀자브 제국군 제1실크연대에 배치되기도 했다. 1890년부터 인도정치부에서 여러 보직으로 일하며 실무 경력을 쌓았다.1903년 임시계급 대령까지 올랐으나 본격적으로 외교관 노선을 타며 중령으로 사실상 제대했다. 1912년 심라회담에서 중화민국-인도, 티베트간의 국경선을 확정짓는 즉 맥마흔 라인이 만들어졌다.
1차 대전이 시작하자 중동으로 이동해 이집트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었다.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요르단의 파이살 왕조와 아랍 통일 국가를 형성하는 목적에서 맺는 협약인 맥마흔 선언을 교환 서신으로 10차까지 주고받으며 성공시켰다. 하지만 조약에 허점을 노리고 사이크스-피코 밀약으로 선언이 뒤집어졌고 벨푸어 선언으로 확인사살하며 아랍 통일 국가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2차 대전이후 중동의 정세는 어지러워진다.
1920년대 중반 외교계에서 은퇴해 영국에 거주하다가 1949년 사망했다.
[1] 임시계급 대령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