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주먹 | |
본명 | 해학기 |
출생 | 1911년[1] |
사망 | 1950년 이후 |
신체 | 신장 188cm |
직업 | 학생, 운동선수, 조직 폭력배 |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시절 권투선수이자 YMCA 학생 주먹패의 초대 보스였던 인물.2. 생애
목포 출신으로 유도와 역도, 권투 선수로 활약했으며 특히 권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때 김기환과 함께 YMCA 소속 권투선수로 활약했으며 만주에서 미들급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188cm[2]라는 장신에 손이 엄청커서 한손으로 사람 얼굴을 움켜잡을 정도였다고 하며, 불의를 보면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일본 학생들과 종로 깡패들에게 구타당하던 학생들을 구해주며 고향친구인 갈치[3]와 함께 자연스레 YMCA 학생 주먹패를 결성하여 보스로 군림하게 되었다.
해학기를 따르는 주먹패의 숫자가 구마적의 종로 패거리들 그 이상이 될 정도였고, 이를 견제하던 구마적의 간부급 주먹들을 눕혀 버렸는데, 그의 주먹에 맞은 간부급 하나가 이틀간 의식을 못찾아 죽을뻔 했다며 ' 살인 주먹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온 신마적 엄동옥이 자신의 부하들과 시비를 붙어 갈치까지 나섰지만 갈치가 패배하자 신마적과 대결하게 되었다. 치열한 사투끝에 그는 신마적의 일격에 패배하게 되고, 학생 주먹패 보스자리를 신마적에게 내준 뒤, 그의 오른팔이 된다.
그런 신마적이 후일 김두한에게 패배한 뒤, 친구 갈치와 신마적이 아끼던 몇몇 부하들과 함께 신마적을 따라가 만주에서 조직 폭력배의 삶을 이어갔다.
3. 최후
해방 이후 신마적이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겠다며 역시나 그를 따라갔으나, 당시 공산주의에다 전쟁으로 난리통이 아닌 찰나에 소련군과 시비가 붙게 되어 싸우던 중, 소련군 한명이 사망하고 만다.해학기와 갈치 신마적의 부하 몇명은 결국 공산당원들에게 붙잡혀 총살형을 당하여 생을 마감하게 된다. [4]
[1] 정확한 생몰년일이 아니나, 김기환과 권투구락부 동기였기에 김기환과 동년배로 추정된다.[2] 그를 기억하는 원로주먹들이 6척2촌의 장신이라고 하였다.[3] 본명은 이민규이며 한성권보(중퇴)출신이다. 당수의 유단자로 유명했다.[4] 그 이후에 살아남은 부하 중 한명이 신마적에게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설득 하였지만, 신마적은 이를 거절하고 평양에 남게되었고 그 뒤로는 그의 생사는 알수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