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2:03:12

한영신

성명 한영신(韓永信)
생몰 1887년 7월 22일 ~ 1969년 2월 20일
출생지 평안북도 신의주시 서부
사망지 서울특별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영신은 1887년 7월 22일 평안북도 신의주시 서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19년 6월 평양에서 김용복(金用福)·김보원(金寶原)·김신희(金信喜)등 장로파 부인 신도들과 함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동 부인회의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 및 임시정부의 선전활동 등을 전개하는 한편 평안도일대의 장로파 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이때 그녀는 일경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노파로 변장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 무렵 평양에서는 장로파를 중심한 애국부인회 외에도 감리파를 중심으로 생겨난 애국부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 양파의 여성조직들은 합동을 모색하여 1919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로 통합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대한애국부인회의 연합회의 본부 부회장을 맡았다. 대한애국부인회는 8백 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20년 10월 동회가 일경에 발각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녀는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공소했으나 평양복심법원에서 오히려 6개월의 형량이 늘어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평양여자신학원(平壤女子神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한편 전국기독교 부인전도회 회장을 맡아 전도사업을 벌였는데 일제의 탄압에 의해 회장직을 사임하였으며 이후 일제의 주요 감시대상으로 고초를 겪였다.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으며, 1969년 2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한영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