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승우(韓承羽) |
이명 | 한승우(韓承宇) |
생몰 | ? ~ ?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승우는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민족운동단체인 권업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그해 7월 신한촌(新韓村)의 청동학원 의연금을 제공하였다. 이후 1919년 3월 2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김치보의 집에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이 조직되었는데, 이때 회장 김치보, 총무 김순약(金舜若), 의장 이일(李逸), 그리고 한승우를 비롯한 11명이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5월 박은식(朴殷植)이 작성한 상주서(上奏書)를 제출할 총대로 선정되었다. 또한 6월 24일에 노인동맹단 평의원회에서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한국독립청원서에 서명했으며, 11월에는 노인동맹단 활동자금으로 구로데고보에서 2만여 원, 블라디보스토크 동쪽의 동령(東嶺)에서 3,000루불을 모집하였다.1920년 노인동맹단 재무, 1921년 노인동맹단 의연금모집 지방유세원을 역임하고, 1923년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노인동맹단 대표로 참석하여 국민대표회의 재정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6월 창조파의 일원으로 새로운 헌법을 제정 통과시키고 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9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동휘 등과 함께 1924년 3월 1일 독립선언 제5주년 기념일에 대규모 시위를 계획했지만 소련 정부의 불허로 무산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한승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