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병희(韓昞熙) |
이명 | 한병희(韓昞凞) |
생몰 | 1903년 ~ 1932년 10월 5일 |
출생지 | 평안남도 진남포 용정동 |
사망지 | 평안남도 진남포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병희는 1903년생이며 평안남도 진남포 용정동 출신이다. 그는 1925년 3월 하순경 서천순(徐千淳), 서상경, 서정기, 곽윤모(郭胤模), 홍진유, 신영우(申榮雨), 이창식(李昌植), 이복원(李復遠) 등과 함께 경성부 낙원동의 수문사(修文社)에서 여러 차례 회합하고 현재의 정치 및 경제 조직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아나키스트의 전국적 연합기관으로서 결사를 조직할 것을 협의했다. 이후 4월 21일과 22일경 다시 신영우, 서상경, 곽윤모, 이창식, 이복원 등과 같은 장소에서 모여 발기회를 개최해 흑기연맹(黑旗聯盟)을 조직했다.주의의 요지는 “자아의 확충을 저해하고 만인의 행복을 유린하는 모든 불합리 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로 삼았으며, 취의서는 “권력으로 결합한 조직을 철저하게 배척한다”로 정했다. 그리고 동지의 규합과 선전방법 등에 대해 논의했으며, 5월 3일 경성부 정동 1번지에서 발회식을 거행하고 결사조직을 완료하기 위해 동지를 규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925년 4월 25일 종로경찰서에 체포되면서 흑기연맹이 완전히 조직되지 못한 채 계획이 좌절되었고, 그는 1925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6년 11월 17일 만기 출옥했다. 이후 진남포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2년 10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한병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