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15:03:24

한문식

<colbgcolor=#000><colcolor=#fff> 한문식
韓文植
출생 1927년 9월 7일
충청북도 청주시
사망 1995년 8월 15일
복무 대한민국 해군
최종계급 해군 대령
복무 기간 1945~1965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1. 개요

한문식(韓文植, 1927년 9월 7일 ~ 1995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한문식은 1927년 9월 7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11월 해방병단(해군의 전신)에 입대하여 임관 후 인천기지 갑판사관, 진해기지 인사관을 역임했다. 1948년 11월부터 김해정(YMS-505) 정장으로 복무하며 해군 작전에 참여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한문식은 1950년 8월 6일부터 7일까지 서해 봉쇄 작전에 참전했다. 당시 김해정을 지휘하며 북한군의 해상 보급로 차단을 수행했다. 이 작전에서 적 발동선 2척, 화물선 2척, 다수의 범선을 격침하여 서해를 통한 적의 무장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1952년 7월 15일, 황해남도 옹진군 창린도가 북한군 300여 명의 기습 공격으로 점령되었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과 연합군은 창린도 탈환을 위한 작전을 계획했다. 당시 한문식은 금강산함(PC-702) 함장으로서 영국 순양함 벨파스트함, 대한민국 해군 호위함(PF-116), 그리고 미 해군 전투기와의 연합 작전에 참여했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유격대에게 흰 천을 소지하도록 하는 ‘백포작전(白布作戰)’을 제안했다.

1952년 7월 16일 새벽, 한문식은 140여 명의 유격대가 탑승한 범선과 발동선을 창린도 남단으로 호송하여 성공적으로 상륙 작전을 수행했다. 이후 연합군의 포격 및 공습 지원을 받아 유격대는 창린도의 전략적 요충지인 81고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한문식은 6·25전쟁 중 혁혁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2024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그를 "3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충무무공훈장 (1951년 10월 28일)
을지무공훈장 (1952년 11월 8일)
충무무공훈장 (1953년 11월 1일)
국가보훈부 이달의 6.25전쟁영웅(2024년 3월)

4. 참고 자료

『6·25전쟁과 한국해전작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6.25 전쟁영웅 한문식 해군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