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도수(韓道洙) |
자 / 호 | 관옥(貫玉) / 죽파(竹坡) |
본관 | 청주 한씨[1] |
생몰 | 1901년[2] 9월 27일 ~ 1942년 7월 5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군 구고면 양지리 (현 전라북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3] |
사망지 | 전라북도 임실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도수는 1901년 9월 27일 전라북도 임실군 구고면 양지리(현 청웅면 구고리)에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아버지 한효석(韓孝錫)과 어머니 전의 이씨 이봉덕(李鳳德)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했다.그는 1919년 3월 16일, 17일, 19일 3일간에 걸쳐 구고리 마을 한복판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서 이강세(李康世)·박용식·한기수·이성의(李聖儀)·최종수(崔宗洙)·이기섭(李起燮) 등 3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마을을 돌며 행진했다. 이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었고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임실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2년 7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한도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