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5 10:40:25

하레드 보르헤티

멕시코의 축구인
파일:Borgetti_2021.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하레드 보르헤티
Jared Borgetti
본명 하레드 프란시스코 보르헤티 에체베리아
Jared Francisco Borgetti Echavarría
출생 1973년 8월 14일 ([age(1973-08-14)]세)
멕시코 시날로아주 쿨리아칸키토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방송인
소속 선수 아틀라스 FC(1994~1996)
클루브 산토스 라구나 (1996~2004)
도라도 데 시날로아 (2004)
CF 파추카 (2005)
볼턴 원더러스 (2005~2006)
알 이티하드 (2006)
크루스 아술 (2007)
CF 몬테레이 (2008)
CD 과달라하라 (2009)
클루브 푸에블라 (2009~2010)
모나르카스 모렐리아 (2010)
클루브 레온 (2010)
국가대표 89경기 46골[1] (멕시코 / 1997~200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은퇴 이후5.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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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 출신의 前 축구 선수. 선수시절 별명은 사막의 여우 (El Zorro del Desierto).

자국리그인 리가 MX에서 300경기가 넘는 경기 동안 통산 241골을 득점하며 현재까지 역대 득점 순위 상위권에 위치한 자타가 공인하는 레전드 스트라이커 중 한명이다.

2. 클럽 경력

2.1. 산토스 라구나에서의 놀라웠던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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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 자국 프로 축구구단인 클루브 아틀라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클루브 아메리카와의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리가 MX 무대를 밟았다.

2년간의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그는 클루브 산토스 라구나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7년동안 97-98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20골 이상을 집어넣으며 골 넣는 기계 마냥 미친 활약을 선보이는 것과 동시에 3번의 득점왕과 2번의 리그 우승을 이뤄 팀과 선수 본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산투스 라구나에서 그는 205골을 득점하면서 현재까지도 역대 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7년간의 놀라운 활약 이후 보르게티는 2004년에 승격팀인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와 1년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유는 CF 파추카에 합류하기 전에 자신의 고향 팀에서 뛰고 싶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파추카에 와서는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로 인해 출전은 많이 없었다.

2.2. 늦은 나이에 해외진출, 그러나 실망스러웠던 볼턴에서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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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리그를 씹어먹었던 32살의 그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고 2005년 8월 4일, 정상급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볼턴 원더러스와 2년 계약을 맺는다. 이는 멕시칸 선수 최초의 EPL 입성이었다.

공식적인 데뷔전은 계약한지 20일뒤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리그 경기였다. 그리고 로코모티브 플로브디브와의 UEFA 컵본선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한다. 10월 20일, 베식타스 JK전에서 또 한번 유럽대항전 골을 기록한다.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찰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고 19경기 2골이라는 기록은 아무리 전성기에서 내려온 시점이라고 하지만 스트라이커로서 충분히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2.3. 중동으로 떠나다

파일:Borgetti_ittihad.jpg

결국 2005-06 시즌 종료 후 그는 팀을 떠났고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알 이티하드로 이적한다.

2006년 9월 9일, 알 타이 FC와의 리그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다. 15경기동안 10골을 득점하며 죽지 않은 골감각을 선보인 보르헤티는 그 해 12월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 유수의 클럽과 링크가 뜨기도 했다.

2.4. 다시 고국으로

파일:Borgetti_monterrey.jpg

2006년 12월 중순에 전성기를 함께 했던 산투스 라구나는 그의 영입에 관심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구단이 다른 선수로 타겟을 변경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크루스 아술과 1년 계약을 맺으며 1년 반만에 고국으로 리턴한다. 크루스에서 뛰던 시절에 그는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우고 산체스에 의해 국가대표 경기에 콜업됐으며 이례적으로 58번이 쓰여진 유니폼을 입고 A매치를 뛰기도 했다.

이후 CF 몬테레이를 거쳐 CD 과달라하라로 이적했다. 그는 이적 후 항상 축구 선수로서 자신의 꿈 중 하나였던 프리메라 디비시온[2]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보유한 팀인 과달라하라에서 뛰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면서 드디어 그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룬 것과 별개로 팀에서의 활약은 영 좋지 않았다. 결국 실망스러운 시즌으로 인해 새로 영입된 다른 팀원들과 함께 방출되고 말았다.

과달라하라를 떠난 보르헤티는 2009 아르페투라[3] 토너먼트에 맞춰 2009년 6월 13일에 푸에블라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프리시즌 경기에서 그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며 아르페투라 개막 후 4주동안은 결장해야만 했다.

그는 2009년 8월 9일 케레타로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8월 22일에는 친정팀 파추카를 상대로 2:1로 이긴 경기에서 헤딩골을 넣어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시즌이 끝난뒤 보르헤티는 다른 팀을 찾기 위해 클럽을 떠났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2009년 12월 27일, 모나르카스 모렐리아로 이적한다. 2010년 2월 13일에 첫 골을 기록했고 이 득점은 멕시코 리그 축구에서 249번째 골이었다. 또한 호세 사투르니노 카르도조와 함께 멕시코 리그 역사상 3번째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며 리가 MX의 전설 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2010년 4월 24일, 그는 자신의 250번째 골을 득점하여 멕시코 리그의 득점왕 호세 카르도소를 제치고 단독 3위로 이름을 올렸다.

2.5. 화려했던 사막의 여우, 은퇴를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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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7살의 보르헤티는 은퇴를 생각해야할 나이가 되었고이미 한참 지났지만..실제로 그는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지만 2부리그인 아센소 MX의 클루브 레온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내 계약을 맺었다.

이후 팀이 플레이오프에 실패하자 방출되었다.

2010년 12월 5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막의 여우' 보르헤티는 은퇴를 선언하면서 16년간 활약했던 프로 무대의 마침표를 찍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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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5일, 보르헤티는 에콰도르를 상대로 A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러나 데뷔전 이후로 3년동안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2000년이 되어서야 그는 본격적으로 대표팀의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2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6골을 득점하며 팀의 본선 진출을 견인했고 23인 최종명단에도 무난히 승선했다.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참여한 그는 2차전 에콰도르를 상대로 전반 28분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첫 월드컵 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헤라르도 토라도가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2:1로 귀중한 승점 3점을 얻으며 조기에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이탈리아와의 3차전. 이미 2승을 거둔 팀은 경기 결과 상관없이 자력으로 16강 진출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도 보르헤티는 선발로 출전했고...
이탈리아전에서 보르헤티의 헤딩골 장면 (9초 부터)

전반 34분, 월드컵 역사에 기록될만한 예술적인 헤딩슛으로 선제 득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블랑코의 크로스를 방향만 살짝 틀어[4] 헤딩으로 연결시키며 당시에도 수준급의 키퍼로 불리던 지안루이지 부폰데꿀멍하게 만든 멋진 득점이었다. 이후 팀은 후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델피에로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강호 이탈리아와 지난 대회 4강 진출팀인 크로아티아 그리고 남미의 다크호스인 에콰도르를 모두 제치고 조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예상 밖에 결과이자 엄청난 선전이었다. 그러나 16강에서 라이벌 미국을 만나 0:2로 패하며 8강 진출은 무산되었다. 본인 또한 이 날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아쉬움이 남는 경기로 남게 됐다.

월드컵을 마치고 여전히 팀의 주력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보르헤티는 2004년에만 10골을 득점하여 엘 트리콜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답게 발군의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하여 브라질독일을 상대로 3골을 득점하며 성공적인 대회를 보내기도 했다.

이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14골을 성공시키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이며 팀을 다시 한번 월드컵 본선으로 이끄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허나 본선에서는 2경기 출전에 무득점으로 그치며 썩 좋지 않은 활약으로 아쉽게 본선 무대를 마쳤다. 이번에도 팀은 16강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나 1:2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2007년 골드컵에서는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여 2골을 성공시키며 대표팀을 결승에 안착시켰으나 미국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에는 본인의 나이도 있고 후배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입지가 크게 좁아지기 시작했다.

2008년 6월 22일, 그는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7:0 대승을 거두는데 기여한 벨리즈와의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면서 이 경기가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4. 은퇴 이후

축구 선수 은퇴 후에는 멕시코 ESPN의 해설위원 및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직접 현장으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문전에서의 침착함, 타의 추총을 불허하는 골 결정력과 당시 멕시칸 선수 치고 큰 키였던 186cm의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피지컬 활용 능력 등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갖출만한 툴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보르헤티의 대표적인 장점은 역시 발군의 헤더능력. 박스 안에서 높은 타점으로 상대 골키퍼와 수비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그의 헤더슛은 가히 위협적이었다. 하단에서 언급할 2002 FIFA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의 헤딩골은 현재까지도 회자가 될 정도로 보르헤티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득점이다.
[1]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득점 2위이다. 1위는 치차리토.[2]리가 MX[3] 전기리그[4] 당시 국내 언론과 뉴스에서 270도 헤딩골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다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