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5 22:12:02

피아베강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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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eggenda del Piave

1. 개요2. 가사

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1915년부터 1918년까지 3년 정도 이어진 이탈리아 전선의 전황을 요약하는 곡으로, E. A. 마리오E. A. Mario가 작사·작곡해 1918년 11월에 발표했다. 이 무렵 이탈리아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공세로 벌어진 피아베강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승리해 오스트리아-헝가리으로부터 마침내 항복을 받아내었다.

1943년 9월, 베니토 무솔리니 실각 이후 이탈리아가 살로 공화국이탈리아 왕국으로 분열된 시기에 왕의 행진곡을 대신해서 이탈리아 왕국의 국가로 쓰인 바 있다. 이후 연합국이 로마에 진격한 1944년 6월부터 1946년 6월 이탈리아 공화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왕의 행진곡과 공동으로 국가로 쓰였다. 공화국 설립 이후엔 이탈리아인들의 노래가 국가가 됐다.

2. 가사

리소르지멘토스러운 요소가 강하며, 피아베강을 외세를 거부하는 수호신처럼 의인화시켜 묘사했다. 가사 한 절이 넘어감에 따라 전황과 피아베강의 물살이 극적으로 전환된다. 볼드체 친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가사가 시처럼 운율을 맞추고 있다.
1절
Il Piave mormorava calmo e placido, al passaggio
dei primi fanti, il ventiquattro Maggio.
피아베강은 잔잔하고 고요하게 속삭였네
5월 24일날 병사가 처음 강을 건널 때에
L'esercito marciava per raggiunger la frontiera
per far contro il nemico una barriera.
군대는 전선에 도달하여
적군을 막기 위해 진군했네
Muti passaron quella notte i fanti
tacere bisognava, e andare avanti!
군대는 조용히 강을 건넜네
묵묵히 전진, 앞으로 앞으로!
S'udiva intanto dalle amate sponde
sommesso e lieve il tripudiar dell'onde.
그동안 군대는 사랑스런 강변에서
은은하고 경쾌한 물소리를 들었네
Era un presagio dolce e lusinghiero
il Piave mormorò: "Non passa lo straniero!"
감미롭고 상서로운 징조 같은
피아베강의 속삭임, "외세는 지나갈 수 없다!"
2절
Ma in una notte triste si parlò di un fosco evento[1]
e il Piave udiva l'ira e lo sgomento.
그러나 어느 슬픈 밤, 군대가 어두운 전황을 얘기하자
피아베강은 경악하고 분노했네
Ahi, quanta gente ha vista venir giù, lasciare il tetto
poiché il nemico irruppe a Caporetto.[2]
아, 적군이 카포레토를 뚫고 들어오니
피아베강은 고향을 떠나는 난민들을 보게 됐네
Profughi ovunque dai lontani monti
Venivano a gremir tutti i suoi ponti!
이산저산에서 온 난민들을 보라
피아베강의 다리를 가득 채우네!
S'udiva allor dalle violate sponde
sommesso e triste il mormorio dell'onde.
그동안 난민들은 더럽혀진 강변에서
은은하고 슬픈 물소리를 들었네
Come un singhiozzo in quell'autunno nero
il Piave mormorò: "Ritorna lo straniero!"
황량하게 흐느끼는 가을 같은
피아베강의 속삭임, "외세가 돌아오는구나!"
3절
E ritornò il nemico per l'orgoglio e per la fame
voleva sfogar tutte le sue brame.
그리고 명예욕과 탐욕에 이끌린 외세가 돌아와
제 욕망을 아낌없이 해소하고 싶어했네
Vedeva il piano aprico di lassù, voleva ancora
sfamarsi e tripudiare come allora.
적군은 양지바른 평원을 보았고
옛날처럼 제 배를 불리고 즐기고 싶었네
"No!" disse il Piave, "No!" dissero i fanti
"Mai più il nemico faccia un passo avanti!"
"안 된다!" 피아베가 선언했네 "안 된다!" 군대가 선언했네
"이젠 한 발자국도 더 못 내준다!"
Si vide il Piave rigonfiar le sponde
e come i fanti combattevan l'onde.
그동안 적군은 요동치는 강변에서
군대처럼 저항하는 물살을 맞았네
Rosso del sangue del nemico altero
il Piave comandò: "Indietro va', straniero!"
오만한 적들의 피로 빨갛게 물들은
피아베강의 명령, "외세여, 물러가라!"
4절
Indietreggiò il nemico fino a Trieste, fino a Trento
e la vittoria sciolse le ali al vento.
적들은 트리에스테, 트렌토까지 물러갔고
승리의 여신은 날개를 활짝 펼쳤네
Fu sacro il patto antico, fra le schiere furon visti
risorgere Oberdan, Sauro e Battisti.
선조들의 염원이 이뤄졌으니 그들 중
오베르단[3], 사우로[4], 바티스티[5]를 다시 보네
Infranse alfin l'italico valore
le forche e l'armi dell'impiccatore.
마침내 이탈리아인의 용기가
폭군의 교수대와 망나니의 도끼를 부쉈으니
Sicure l'Alpi, libere le sponde
e tacque il Piave, si placaron l'onde.
알프스를 확보하고, 해안가를 해방하자
피아베강은 잠잠해졌고 물살은 가라앉았네
Sul patrio suolo, vinti i torvi imperi
la pace non trovò né oppressi né stranieri!
고토에서 암울한 제국은 패배하고
외세도 폭군도 없는 평화가 찾아왔네!

[1] 혹은 Ma in una notte triste si parlò di tradimento.#[2] 혹은 per l'onta consumata a Caporetto.#[3] 굴리엘모 오베르단(Guglielmo Oberdan, 1858~1882). 트리에스테 출신의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로 본명은 빌헬름 오베르당크(Wilhelm Oberdank). 본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독일계(정확히는 어머니가 독일인인 독일계 혼혈)였다. 독일계 혈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열렬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로 성장하였고 1882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트리에스테 지배 500주년을 기념해 트리에스테를 방문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이후 대역죄로 교수형이 집행되었으며 한편 암살 시도를 넘긴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후 죽을 때까지 트리에스테를 방문하지 않았다.[4] 나차리오 사우로(Nazario Sauro, 1880~1916). 카포디스트리아 출신의 선장이자 민족주의자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 왕립 해군에 자원입대해 어뢰정장으로 임명되어 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열심히 작전을 수행했다. 1916년 7월 피우메 항을 사보타주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좌초되는 바람에 생포되어 대역죄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5] 체사레 바티스티(Cesare Battisti, 1875~1916). 트렌토 출신의 기자이자 정치인으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제국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한 전적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 역시 열렬한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로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이탈리아로 도망쳐 이탈리아 왕국군에 자원입대해 대대장 직책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다. 그 후 1916년 7월 아시아고 전투에서 생포된 후 역시 대역죄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