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축구 클럽에 대한 내용은 델피노 페스카라 1936 문서 참고하십시오.
페스카라 Pescara | |||
국가 | 이탈리아 | ||
지역 | 아브루초 | ||
면적 | 34.36km2 | ||
인구 | 119,554명[1] | ||
시장 | 루카 살베티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페스카라 (이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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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아브루초 주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파괴된 로마 도시 '아테르눔'이 중세 초 재건되면서 물고기가 많은 곳(Piscaria)이라는 뜻의 현 지명으로 재건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전에는 양시칠리아 왕국에 속했다. 2009년 제16차 지중해 게임을 개최하였다. 인구는 약 12만.(2023)2. 지리
페스카라는 아드리아해 연안의 해발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기원전 약 몇 세기부터 아테노-페스카라 강 하구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에서 발전했다. 남쪽으로는 한때 아드리아 해안의 대부분을 따라 피서객들에게 그늘을 드리웠던 소나무 숲이 해변 근처로 거의 사라졌다.[2]3. 역사
페스카라는 로마 시대 전부터 존재하였다. 베스티니, 마루치니 부족이 발칸반도에 있던 부족과 교류하기 위해 항구를 설립하였던 것에 시작하였다. 마을의 이름은 아테르눔이었으며, 로마가 이 도시를 정복한 이후에는 비아 클라우디아 발레리아와 비아 티부르티나를 통해 로마와 연결되었다. 페스카라는 로마 제국의 동방 영토와 교류하기 위한 주요한 항구였다. 하지만 597년 게르만족 일파인 랑고바르드족이 페스카라를 파괴한 후 그저그런 어촌으로 전락하였다. 이 시기 페스카라의 수호성인이었던 성 세테우스는 랑고바르드족에게 목에 돌을 묶은 채 다리에서 던져져 처형되었다고 한다. 1140년 시칠리아 왕국의 루지에로 2세가 이곳을 정복하면서 고기가 풍부한 어촌이라는 뜻의 ‘피스카리아’로 바뀌었다. 이는 페스카라라는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14세기 이후 페스카라는 스페인 나폴리 왕국의 아래에 들어갔다. 그 이후 페스카라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탈리아 중부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전진 기지 역할을 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를 정복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본토 병력을 견제하기 위해 해군을 보내 페스카라 항구를 포위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페스카라는 적극적으로 통일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이탈리아 통일 영웅 주세페 가리발디의 협력자 클레멘테 드 시저리스가 페스카라를 해방할 때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사보타주를 하기도 하였다. 2차 대전시기 독일군 보급로를 끊으려는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으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4. 자매 도시
5. 출신인물
-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 이탈리아의 시인
- 에니오 플라이아노 : 이탈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 마르코 베라티 : 이탈리아 축구 선수
- 야르노 트룰리 : 이탈리아의 前 F1 드라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