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상징 중 하나인 카스바와 푸른 샘
성벽과 구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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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تزنيت베르베르어 ⵜⵉⵣⵏⵉⵜ
영어 Tiznit / Tiznet
모로코 남부의 도시. 아가디르에서 남쪽으로 75km, 구엘민에서 북쪽으로 80km, 시디 이프니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8만명이다. 19세기 알라위 왕조의 남부 군사 거점으로 세워졌고, 전통적으로 구엘민과 함께 모로코 본토의 남쪽 끝으로 여겨졌다. 20세기 초엽에는 '푸른 술탄' 엘히바의 대프랑스 저항의 중심지였다. 성벽이 잘 보존된 구도심에는 카스바, 칼리파 궁전, 엘 메추아르 광장, 전통시장, 대사원 등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각종 자치 공동체를 형성하고 적극 참여한다. 특산물로 은장신구가 있다.
2. 역사
1882-84년간 세워진 티즈니트 성벽
서북쪽 10km 지점의 아글루는 무라비트 왕조의 발상지였다. 본래 아가자르 티즈니트 부족이 살던 마을이다가 1810년 알라위 왕조의 술탄 물라이 슬리마네 (술라이만)의 명으로 19세기 들어 사실상 자립한 안티-아틀라스 산지의 타제르왈트[1] 세력을 원정하기 위해 출정한 핫지 모하메드 아그나즈가 성탑 5개를 지닌 카스바를 세웠다. 모하메드 아그나즈는 이곳을 바탕으로 수스 지방에 대한 알라위 조의 지배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1882년 남부 지방을 순행하던 술탄 하산 1세에 의해, 대서양의 유럽 열강과 일리그를 거점으로 한 타제르왈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거점으로써 도시화되었다. 2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8m 높이, 7km 길이의 성벽이 둘러진 티즈니트는 타루단트와 함께 모로코 남부에서 가장 요새화된 도시가 되었다. 하산 1세는 티즈니트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1882년 창건 후 1886년 재방문하였다.
2.1. 근현대
은 세공품이 거래되는 티즈니트의 시장
20세기 초엽까지 유대인 은세공인들이 대거 정착하여 티즈니트는 모로코 제일의 금속 세공업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도 은제 장식구나 단검 등이 특산물이다. 한편 외진 곳의 군사 도시로써 티즈니트는 1910년대 서구 열강에 대항하는 거점으로 제격이었다. 술탄 하피즈의 밀지를 받은 의병대장 셰이크 마아 엘-아이닌은 술탄의 충고에 따라 6천의 병력을 이끌고 티즈니트를 중심지로 삼았다. 1910년 프랑스 군에게서 술탄을 구출하려다 패배한 엘아이닌은 그해 10월 티즈니트에서 사망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의병대장이 된 아들 아흐메드 엘-히바는 1912년 모로코가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전락하자 티즈니트에서 스스로 술탄이라 칭하며 거병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타루단트와 아가디르 등 모로코 남부 대부분이 호응하였고, 8월 엘히바는 마라케쉬에 입성하여 술탄으로 정식 즉위하였다. 하지만 9월 시디 두 오스만 전투에서 엘히바는 2천 병력을 잃으며 프랑스 진압군에 패배하였고, 티즈니트로 철수하였다. 1917년 5월 프랑스에게 도시를 뺏긴 후로도 항전을 이어가던 엘히바는 1919년 6월 케르두스에서 사망하였다.
3. 볼거리
- 옛 성벽
- 푸른 샘 (العين الزرقاء)
전설에 의하면 랄라 즈니니아 가뭄 후 일대를 지나던 한 소녀의 개가 목이 말라 땅을 파다가 분출한 샘으로, 티즈니트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근원이 되었다 한다. 카스바와 함께 방문하기 좋다.
- 카스바 아그나즈 (قصبة أغناج)
1810년 핫지 모하메드 아그나즈가 세운 카스바로, 5개의 성탑으로 둘러져 있다. 내부에는 티즈니트 박물관이 있다.
- 대사원 (الجامع الكبير)
19세기 말에 세워진 모스크로, 20세기 초엽과 1980년대에 증축과 보수를 거쳤다.
[1] 시디 우 무사를 성인으로 모시는 수피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