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토미 모톨라 Tommy Mottola | |
본명 | 토마스 다니엘 모톨라 Thomas Daniel Mottola |
출생 | 1948년 7월 14일 ([age(1948-07-14)]세) |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 |
직업 | 음반 프로듀서, 경영인, 전직 가수 |
소속 | 모톨라 미디어 그룹 |
활동 | 1962년 ~ 현재 |
배우자 | 리사 클라크 (1971년 결혼, 1990년 이혼) 머라이어 캐리 (1993년 결혼, 1998년 이혼) 탈리아 (2000년 결혼) |
자녀 | 4명 |
경력 | 소니 뮤직 CEO(1990년 ~ 200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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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경영인이자 음악 프로듀서. 1960년대 중반 가수로 먼저 데뷔했다가 실패한 뒤, 음반 프로듀서로 전향했다. 미국 음악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던 연예기획사 사장 중 1명으로, 소니 뮤직의 CEO를 역임하며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 데스티니스 차일드, 샤키라, 딕시 칙스 등 수많은 가수들의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머라이어 캐리의 전 남편으로 더 알려져 있는 편이다.1990년대 ~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가요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프로듀서로서의 입지와 소속 가수들에 대한 대우, 머라이어 캐리와의 결혼생활 등으로 얻은 비평적인 시선이 공존하는 등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가수에서 프로듀서로
원래 토미 모톨라는 가수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호프스트라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뒤, 1966년 R&B 밴드 엑소틱스로 데뷔했으며 팀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았다. CBS 레코드사와 음반계약을 한 뒤, 메이저로 진출한 이들은 팀 이름을 T.D Valentine으로 바꾸고 활동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가수의 꿈을 접은 그는 레코드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첫 음반회사인 Champion Entertainment Organization을 설립했다. 토미는 기획사에서 여러 신예 아티스트들을 캐스팅하고 계약을 주선하는 일을 맡았는데, 1970년 듀오 홀 앤 오츠를 발굴해 성공시켰다. 뒤이어 1980년대 초반에는 흑인으로 구성된 록 그룹 Xavion을 프로듀싱해 당시로서는 홍보 수단으로 잘 쓰이지 않던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다시 한번 성공시켰다.2.2. 소니 뮤직의 CEO
1988년, 토미 모톨라는 소니 뮤직의 프로듀서로 영입되었고 2년 뒤에 CEO 자리에 오르게 된다. 토미는 머라이어 캐리를 영입해 프로듀싱 시켜 성공시킨 뒤, 이 후 셀린 디옹과 데스티니스 차일드까지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둔다. 사실상 1990년대의 미국 가요계는 토미 모톨라가 제작한 가수들이 이끌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니 뮤직 시절 토미는 세계 음악시장에서 거물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샤키라, 딕시 치스 역시 대성공을 거뒀고 1990년대 초부터는 마이클 잭슨도 영입해 Dangerous와 History 앨범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또한 브루스 스프링스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빌리 조엘의 리마스터 앨범을 발표하며 다시 한번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그가 발탁한 머라이어 캐리와는 1993년 결혼했지만, 각종 갈등으로 인해 5년만인 1998년 이혼하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토미가 머라이어의 사생활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고 했고, 항상 토미의 프로듀싱 방향으로만 따라가다보니 머라이어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인 전환을 이루는 게 불가능해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이 후 머라이어 캐리는 자서전과 인터뷰 등지에서 토미와의 결혼생활을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1] 훗날 토미는 인터뷰에서 이러한 행동을 인정했지만, 머라이어의 성공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나름의 이유를 댔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마이클 잭슨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마이클의 정규 10집 앨범 Invincible의 프로모션을 담당하는데, 마이클 잭슨과 소니 뮤직 사이의 갈등이 생기며 프로모션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제대로 열받은 마이클 잭슨은 2002년 여름 토미 모톨라와 소니 뮤직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다녔는데, 마이클은 토미 모톨라를 악마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칭하며 토미 때문에 미국 가요계의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해 나온 프로젝트 싱글 What More Can I Give는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홍보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2003년 1월 13일, 토미 모톨라는 소니 뮤직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며 회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