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토머스 드 클리퍼드 Thomas de Clifford |
출생 | 1362년 또는 1363년 |
잉글랜드 왕국 클리퍼드 가문 영지 | |
사망 | 1391년 |
지중해 | |
아버지 | 로저 드 클리퍼드 |
어머니 | 모드 뷰챔프 |
형제 | 윌리엄, 필리파, 캐서린, 모드, 마거릿 |
부인 | 엘리자베스 드 로스 |
자녀 | 존, 마틸다 |
직위 | 제6대 클리퍼드 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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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전선에서 활동했다.2. 생애
1362년 또는 1363년 요크셔, 노섬벌랜드, 컴벌랜드, 웨스트모어랜드 등 잉글랜드 북부의 광대한 땅을 소유했으며, 아일랜드에 있는 클레어 가문 영지까지 보유한 클리퍼드 가문 영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로저 드 클리퍼드는 제5대 클리퍼드 남작이고, 어머니 모드 뷰챔프는 제11대 워릭 백작 토머스 뷰챔프의 딸이다. 형제로 윌리엄[1], 필리파[2], 캐서린[3], 모드[4], 마거릿[5]이 있었다.1365년, 웨스트모어랜드에 있는 미번의 왕실 영지를 받았으며, 1379년 40파운드 상당의 부동산을 더 받았고, 1383년 브로에 있는 토지를 얻었다. 1379년 10월 26일 아일랜드 원정에 참전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스코틀랜드군이 영지를 침략했을 때 이를 막을 지휘관으로 지명되었다. 1379년 5월 4일 재판에 판사로 참여해 살인 혐의가 씌워진 요크셔 사람을 사면했다. 1382년 10월 왕실 숲에서 사냥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세 명의 "왕의 친척과 젊은 기사" 중 한 명이었으며, 같은 해 12월 왕실 기사 중 한 명으로 언급되었다.
1385년 10월 23일 연간 200마르크의 보조금을 받아 잉글랜드 남서부의 4개 영지와 트렌트 북쪽 숲의 보호 구역을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1384년 12월 16일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 함께 칼라일 성의 후견인이 되었고, 1386년 3월 스코틀랜드 서부 국경의 관리인으로 지명되었다.1387년 1월 28일 왕실 문서에서 "왕의 매우 사랑스럽고 충성스러운 기사"로 지명되었고, 1388년 9월 왕실 말 관리인을 맡았으며, 1389년 5월 와실 기사로 재지명되었다.
1389년 7월 13일 아버지 로저가 사망한 뒤 모든 재산과 작위를 상속받았으며, 그해 12월 6일 클리퍼드 남작 자격으로 의회에 처음으로 소환되었다. 이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과 칼레에서 벌어진 결투 재판에 참여했으며, 1390년 칼레 인근 생잉글베르에서 열린 마상창시합에 참여했다.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에 따르면, 그는 이 행사에서 "고귀하고 용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390년 말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1391년 1월 19일 가문의 성인 스킵튼 성에서 다시 잉글랜드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사망할 경우 영지에서 얻은 이익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1391년 2월 중순에 다른 젊은 잉글랜드 귀족들과 함께 튜튼 기사단에 가담해 고대 프로이센을 향한 십자군에 참여했다. 그해 여름 쾨니히스베르크에 있을 때, 그는 제3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의 사생아인 윌리엄 더글러스와 말다툼을 벌인 끝에 결투를 벌여 죽였다. 이 일로 죄책감을 느낀 그는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가 1391년에 지중해의 어느 섬에서 사망했다. 사망 날짜와 장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3. 가족
- 엘리자베스 드 로스(? ~ 1424년 3월 26일 이후 사망): 제4대 로스 남작 토머스 로스의 딸.
- 존 드 클리퍼드(1388 ~ 1422): 제7대 클리퍼드 남작.
- 마틸다 드 클리퍼드(? ~ 1446): 코비의 제6대 라티머 남작 존 네빌과 초혼, 코니스버러의 리처드와 재혼. 리처드가 처형된 후 코니스브러 성 등지에서 조용히 살다가 1446년 8월 26일에 사망해 요크성의 로슈 수도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