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5:01:22

텍사스 BP 정유공장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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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고 과정3. 사고 조사4. 사고 이후5. 관련 문서

1. 개요

2005년 3월 23일 수요일, 미국 휴스턴주 텍사스에 위치한 BP 정유공장에서 석유가 폭발하여 공장의 일부가 타버리고, 15명이 사망, 18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사고다.

사상 최악의 참사 시즌 3 에서 소개되었다.

2. 사고 과정

2005년 3월 23일 새벽 2시경 정유소 직원들은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인 탄화수소를 제정제하기 위해 이성질체화[1]정제탑에 주유하기 시작하였다, 매뉴얼상으로는 정제탑에는 최대 9피트(2.7m)의 엑체만이 들어갈수 있었고 평균적으로는 6피트(2.1m)가량의 탄화수소이 들어가야했지만 직원들은 이러한 매뉴얼들을 무시한채[2]계속 탄화수소를 주입하였다, 새벽 3시 9분에 첫번째 과잉수용 경보가 울렸지만 그 다음 경보기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3시 30분이 되자 외부 표시계에 최대로 표기되는 9피트까지 탄화수소가 차올랐지만 미 화학물질 안전 및 위험 위원회(U.S. Chemical Safety and Hazard Investigation Board) 조사로는 그 당시에 13피트(3.96m)까지 차오른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제해야할 야간 근무조장은 새벽 5시에 짧게 휘하 직원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브리핑한뒤 업무시간이 끝나기 1시간전에 일찍 퇴근하였다.

오전 6시경에 도착한 주간 근무조장은 야간 근무조가 남긴 정제탑 기록을 확인하였지만 그 기록에는 탄화수소가 얼마나 차올랐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7시 15분에는 정제탑 감독관이 도착하였지만 1시간이나 늦은 관계로 상황 브리핑을 건너 뛴 뒤 근무에 투입되었다, 9시 51분에는 근무조 교대시간동안 중단된 정제작업을 계속하면서 이미 과잉된 정제탑에 추가적으로 탄화수소를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동용량통제밸브가 작업자들에게 부여된 서로 엇갈리는 지시로 인해 수시간동안 닫힌상태로 방치되어 정제탑 안의 탄화수소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상태로 방치되었다.

오전 11시가 되기 몆분 전 주간 근무조 감독관은 가족 문제로 메모 하나만 남긴채 시설을 빠져나왔지만 이 감독관을 대체할 아무런 인력이 도착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정제탑 내부의 탄화수소는 98피트(29.8m)까지 차올랐으며 이는 정상적인 상황에서의 탄화수소 수용량을 15배나 뛰어넘는 용량이였지만 아무도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정제탑에 부착된 용량 표시기는 부정확하게 설치된 결과로 정제탑 내부 탄화수소가 줄어들고 있다고 표시하였고 관제소에서도 탄화수소 용량을 정확히 표기할 장비가 없었다.

오후 12시 41분경 정제탑 내부의 압력이 위험할 정도라는 경보가 울리자 직원들은 비상 압력 완화 밸브를 돌려 정제탑 내부의 기체를 배출시기키는 한편 4개의 가열기중 2개를 끄고 위에 언급된 자동용량통제밸브를 열어 탄화수소를 저장용 탱크와 열교환기로 빼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가열된 탄화수소가 열교환기에서 열을 정제탑으로 배출하기 시작하자 내부 탄화수소 온도는 화씨 141도(섭씨 60도)까지 치솟기 시작하였고 이내 끓기 시작한 탄화수소는 비상용 기체 방출구를 통해 넘치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무려 52,000갤런(19만 6천 리터)가 넘는 탄화수소는 오후 1시 14분경 비상용 기체 방출구를 통해 배출되기 시작하였고 기화된 유증기는 1분 30초여만에 근처에 주차된 트럭의 엔진에서 발생한 불씨로 인해 점화하여 폭발하였다.

사고로 블로우다운 드럼 바로 옆의 건물에서 회의를 하던 12명의 하청업체 직원들과 3명의 외부 근로자들이 사망하였으며 180명이 화상과 유독가스 흡입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3. 사고 조사

사고 직후 BP사가 자체적으로 내부 안전감독부 부서장인 존 모그포드를 파견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 후에 모그포드 보고서로 알려진 첫번째 사고 보고서는 당년 12월 9일 발표되었으며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격리 시설의 실패, 탄화수소 역류에 대한 격리 시설의 실패, 정제탑을 2번에 결쳐 시작하도록 지시한 업무 지시, 기술과 경험의 부재, 그리고 블로우다운 드럼(정제탑에서 비상시에 기체를 방출하기 위한 시설)의 기술적 결함"등을 뽑았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다른 BP 직원들을 법정에 서게 할 증거들을 찾지 못하였다.

BP사는 모그포드 보고서를 포함하여 추가적으로 2개의 보고서를 제출하였지만 이후에도 2번이나 동일한 정유소에서 사고가 일어나자 미 화학물질 안전 및 위험 위원회는 BP사에게 즉시 BP 미국지사에 대한 내부 보고서와 이번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권고하였다.

BP사는 미국 제61대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를 포함한 외부 인사들을 고용하여 조사를 진행하였고 2007년 1월 16일 베이커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베이커 보고서는 BP사의 안전규정에도 불구하고 BP사 소유의 정제소들은 이를 허술하게 따랐으며 BP사의 안전 규정을 수시로 직원들을 과로에 시달리게 하여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였다.

베이커 조사단은 추가로 미국 내부 BP사 소유 정유소 직원들과 하청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이번 사고가 일어난 텍사스시티 정유소와 톨레도[3] 정유소가 최악의 안전환경을 지녔으며 워싱턴주에 위치한 체리 포인트 정유소가 반대로 최고의 안전환경을 지녔다고 평가하였다.

베이커 보고서는 최종적으로 BP사에게 10가지의 권고사항을 전달하였다.

미 화학물질 안전 및 위험 위원회(USCSB)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조사는 BP사만이 아니라 미 직업 안전 건강 관리청(OSHA)의 역할이 충분하였는지까지 조사하였으며 250만 달러의 예산과 13명의 조사관을 동원하여 진행하였다. BP사 내부 문건 3만건과 370명에 대한 인터뷰, 컴퓨터 모델링 조사까지 동원하여 2007년 3월 21일 371장 가량의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USCSB의 조사서는 BP사가 이전에도 권고된 수많은 안전보안사항들을 무시하였으며 특히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주목된 ISOM 정제탑과 그와 것과 연결된 블로우다운 드럼의 문제점들을 지적하였다. 이미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8번이나 블로우다운 드럼을 통해 가연성 기체가 뿜어져 나온적이 있었지만 BP사는 이러한 사고들을 방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노후화된 정유소 설비들이 오작동하거나 심지어 아예 작동하지 않는 등 수많은 전조 증상들이 있었지만 BP사는 이러한 장비들을 교체하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1999년 BP사가 Amoco를 인수합병하면서 시설의 수많은 직원들을 정리해고 하였으며 그중에는 ISOM 정제소를 관할하던 직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BP사에 가혹한 안전규정들이 안그래도 부족한 직원들을 과로로 떠밀어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이 흐려지는등 각종 부작용이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4. 사고 이후

정유소는 그해 닥칠 허리케인에 대비하여 단기적으로 폐쇄되었으며 2006년 3월에 단계적으로 다시 가동하기 시작하였다.

폭발로 인한 피해액만 2억 달러에 달하며 이후에 수리와 피해보상금으로 BP사가 지급한 돈만 한화로 2조 8천억원에 달한다.

사고직후 CEO이던 존 브라운(John Browne)이 현장에 방문하였지만 BP사는 이번 사건을 당시 근무했던 근로자들에게 떠밀자 노조원들과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BP사 북미지사장이던 로스 필라리(Ross Pillari)가 5월 17일 대국민 사과를 진행하였다.

이후에도 BP는 그해에 건설된 시추선이 허리케인에 직격타를 맞고 침몰할 뻔하거나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폭발 사고로 한동안 미국 내 이미지는 환경파괴범으로 낙인이 찍혔다.

5. 관련 문서



[1] Isomerization Unit, ISOM Unit[2] 만약에라도 안에 탄화수소가 너무 적다면 가열기가 과열되어 고장날수도 있다는 이유였다.[3] 스페인의 그 도시가 아니라 오하이오주의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