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anga탄자니아 동부의 도시. 바가모요에서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40만명으로, 대부분 무슬림이다. 지명은 스와힐리어로 '돛'을 뜻한다. 탕가 만의 남안에 자리하여 파도를 피할 수 있는 항구가 있고, 내륙의 아루샤와 철도로 연결된다. 동쪽 해안에서 50km 건너편에는 펨바 섬이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0km 가면 케냐와의 국경이 나오고, 몸바사와도 120km 정도 거리이다. 서남쪽에는 탕가 공항이 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고, 1차 대전기 탕가 전투가 벌어졌다.
2. 역사
남쪽 12km 지점의 톨론고 유적
독일 총독 관저이던 탕가 박물관
6세기부터 항구로 기능했다 전하며, 15세기 들어 남쪽의 도시 톨론고는 스와힐리 해안의 주요 무역 거점 중 하나였다. 1498년과 1499년 바스쿠 다 가마가 2차례 방문할 정도로 번성하던 톨론고는 16세기 들어 몸바사에 밀려 쇠퇴했고, 17세기에 버려졌다. 18세기 오만 제국 하에서 탕가는 상아와 노예 무역 거점으로 성장했고, 1873년 유럽 열강들의 압력 하에 노예 무역이 폐지된 후 1889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군사 거점이 되었다. 1896년 탕가를 기점으로 내륙을 잇는 우삼바라 철도 공사가 시작되었다.
독일 지배 하에서 천연 섬유의 원료인 시살 나무 경작이 시작되었고, 인구는 급증했다. 급격히 성장한 시가지 내에는 트램이 놓이기까지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초엽인 1914년 11월 영국군이 침공해 탕가 전투가 벌어졌고, 열세였던 독일군이 극적으로 승리했으나 1916년 6월 영국 해군의 포격 후 7월에 점령되었다. 1919년 기준 탕가는 탄자니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고, 1961년 독립 시에는 제2의 도시였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시살 가격이 폭락하고 사회주의 정권의 경제 통제가 시작되며 탕가의 무역은 쇠퇴했다.
3. 경제
탄자니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2번째로 큰 항만인 탕가 항구에서는 시살 시멘트, 섬유, 커피, 차, 면화 등이 수출된다. 탕가 만의 북안인 촌골레아니는 2026년 말부터 기능하기 시작한 동아프리카 동서 송유관의 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