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아 왕국 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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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비스타 | 코티소 | 코모시커스 | 스코릴로 | 두라스 | 데케발루스 | }}}}}}}}}}}} |
이름 | 코티소(Cotiso)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전 9년 |
재위 | 미상 ~ 기원전 9년 |
직위 | 다키아 왕국 국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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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키아 왕국 2대 국왕.2. 생애
다키아를 통합한 부레비스타가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다 암살된 후, 다키아를 구성했던 부족들은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다. 그는 이 중 한 부족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바나트와 올테니아 사이의 일대를 장악했다. 고대 역사가 플로루스에 따르면, 산속에 살던 다키아인들을 거느리고 다뉴브 강이 얼어붙을 때마다 남하하여 로마군 기지를 파괴하고 마을을 약탈한 뒤, 토벌대가 오기 전에 도로 강을 건너 산속에 숨었다고 한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자기 딸을 그에게 줘서 호의를 얻으려 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한 수에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코티소와 안토니우스의 동맹을 막기 위해 율리아와 코티소의 약혼을 주선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이 사건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본다.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다키아인들의 침략을 물리쳤다.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는 황제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코티소의 군대가 파괴되었으니 로마는 안전해졌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다키아군은 이후에도 계속 다뉴브 강을 건너 판노니아와 모이시아 일부를 침략했다. 기원전 9년, 마르쿠스 비니키우스의 로마군이 다뉴브 강을 건너 다키아를 침공했다. 플로루스에 따르면, 로마군은 다키아 왕의 목을 베어 로마로 이송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비니키우스의 로마군과 맞서다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