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코스 해전 Battle of Corycus | ||
시기 | 기원전 191년 9월 | |
장소 | 소아시아 이오니아 코리코스 앞바다 | |
교전국 | 로마 공화국 페르가몬 왕국 | 셀레우코스 제국 |
지휘관 |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에우메네스 2세 | 폴리크세니다스 |
병력 | 퀸퀘레메 105척, 소형선 50척 | 대형선 70척, 소형선 130척 |
피해 | 나포 1척 | 침몰 10척, 나포 13척 |
결과 | 로마 공화국-페르가몬 왕국 연합군의 승리. | |
영향 | 셀레우코스 제국 함대의 약화 |
[clearfix]
1. 개요
로마-셀레우코스 전쟁 시기인 기원전 191년 9월, 로마 공화국-페르가몬 왕국 연합 함대가 셀레우코스 제국 함대를 격파한 해전.2. 상세
로마 공화국과 셀레우코스 제국간의 전쟁이 발발한 직후, 로마 원로원은 셀레우코스군이 발칸 반도에 추가로 넘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에게 해 해상을 봉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레가투스 직책을 맡은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는 오스티아 항구에 집결한 50척의 로마 전함, 6척의 카르타고 공화국 함선, 25척의 경전함을 이끌고 에게 해로 출항했다. 이후 그리스 남부의 피레우스 항에 도착한 뒤 아카이아 동맹 함대와 합류하면서, 로마 함대 규모는 퀸퀘레메 81척, 소형선 24척으로 늘어났다.기원전 191년 4월 24일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정예병 10,000여 명을 상실하고 소아시아로 패주한 셀레우코스 제국 군주 안티오코스 3세는 로마 함대가 에게 해를 장악하게 놔뒀다간 로마군이 소아시아까지 건너올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폴리크세니다스에게 이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겼다. 폴리크세니다스에게 주어진 셀레우코스 함대는 200척으로 살리나토르의 함대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함대는 해상전 경험이 부족했고 70척만이 퀸퀘레메에 저항할 수 있는 대형선이고 나머지는 전투력이 부족한 소형선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해상전을 벌일 수 없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우선 에페수스에서 북쪽으로 항해하여 포카이아로 이동해 페르가몬 해군이 주둔하고 있는 엘라이아 항을 견제했다. 이때 로마 함대는 델로스에 도착했고, 로도스 함대는 사모스 섬에 이르렀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척후선들을 통해 적의 위치를 확인한 뒤, 페르가몬 해군을 섣불리 저지하려 했다가 로마 해군이 후방에서 들이치면 포위섬멸될 위험이 크다고 여겼다. 따라서 로마 해군과 페르가몬 해군이 합세하는 것을 저지하는 대신 에페수스에 있는 해군 기지에 가까이 머물었다. 살리나토르는 페르가몬 국왕 에우메네스 2세가 친히 이끌고 온 페르가몬 해군과 합세하면서 총 105척의 퀸퀘레메와 소형선 50척을 갖췄다.
그 후 폴리크세니다스는 코리코스 시 남서쪽의 키소스 항구로 함대를 옮긴 뒤 로마-페르가몬 연합 함대와 로도스 함대가 합류하는 것을 기필코 저지하기로 했다. 기원전 191년 9월 로마-페르가몬 연합 해군이 로도스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코리코스로 접근하자, 폴리크세니다스는 즉시 함대를 출격시킨 뒤 저지선을 펼쳤다. 당시 로마-페르가몬 연합 해군은 셀레우코스 해군에 비해 대형 전함이 훨씬 많았지만, 로마 해군이 앞서가고 페르가몬 해군이 뒤따라 가는 형태로 이동했기 때문에 당장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대형 전함은 셀레우코스 함대보다 현저히 적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이 점을 활용해 적을 단시일에 최대한 큰 피해를 입혀서 패퇴시키기로 했다.
해전 초반, 셀레우코스 해군은 선두에서 돌진해온 카르타고 함선 한 척을 쟤빨리 포획하고 다른 선박을 몰아냈다. 살리나토르는 페르가몬 함대가 합류할 때까지 교전을 지연시키기 위해 로마 함대를 바다 쪽으로 신속하게 조종했다. 이후 페르가몬 함대가 전투에 가담하면서 수적 우위를 살릴 수 있게 되자, 살리나토르는 부하들에게 적선에 바짝 다가가서 갈고리를 던져서 옴짝달싹 못하게 한 뒤 적선에 뛰어들라고 명령했다. 로마군은 지시에 따라 갈고리를 던져 적선을 묶어놓은 뒤 적선으로 뛰어들어서 셀레우코스 장병들을 살육했다. 이윽고 셀레우코스 좌익 편대가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이는 적에게 궤멸되려 하자, 폴리크세니다스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전군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셀레우코스 함대는 적 함선보다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추격을 뿌리치고 에페수스 항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셀레우코스 함대는 코리코스 해전에서 10척이 침몰하고 13척이 나포되는 피해를 입은 데 비해, 로마-페르가몬 연합 함대는 1척만 나포되었다. 그 후 폴리크세니다스는 에페수스 항구에서 가만히 있었고, 살리나토르는 로도스 함선들과 합세해 총 130척의 대형 함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적군이 에페수스의 방비를 굳건히 하고 한 발자국도 바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공세는 하지 않고 로도스 함대에게 에페수스 봉쇄를 맡기고 자신은 로마 및 페르가몬 함대와 함께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가서 로마군이 소아시아로 건너가는 것을 돕기로 했다.
한편, 티오코스 3세는 코리코스 해전에서 아군 함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에페수스로 전령을 보내 폴리크세니다스에게 새로운 대형 선박을 대거 건조하라고 지시하고, 한니발 바르카에게 시리아와 페니키아에서 2번째 함대를 모아서 에페수스에 고립된 함대를 구원하라고 지시했다. 기원전 190년 한니발이 에페수스에 고립된 아군 함대를 구하기 위해 북상하고 로도스 함대가 이를 저지하면서 에우리메돈 해전이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