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1 17:21:39

가메이 고레노리

카메이 코레노리에서 넘어옴
파일:220px-Kamei_Korenori.jpg
1. 개요2. 생애
2.1. 아마고 가문 휘하2.2. 시카노 성의 성주가 되다2.3. 임진왜란 참전2.4. 말년
3. 기타4. 미디어믹스

1. 개요

亀井 茲矩

(かめい これのり)
(1557년 ~ 1612년)

전국시대,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 유 나카츠나의 아들. 창을 잘 써서 창의 신주로(槍の新十郎)라는 별명이 있었다

2. 생애

2.1. 아마고 가문 휘하

이즈모의 유노쇼에서 태어났고 1566년에 아마고 가문이 멸망하면서 1572년까지 아마고 가문의 옛 신하에게 길러지다가 이무라 카쿠베에에게 의지한다. 1573년에 아마고 카츠히사, 야마나카 시카노스케의 이나마 공격을 알고 키리야마 성으로 찾아가 아마고 부흥 운동에 참가해 함께 싸웠다.

1574년 2월에 와카사 계곡에서 야베 유키츠나를 토벌하고 4월에는 시카노스케의 양녀인 카메이 토키코와 결혼해 카메이 가문을 계승하며, 모리 가문의 공격으로 아마고 부흥군이 불리해 아마고 부흥군이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로 사실상 들어가게 되자, 고레노리 또한 아케치 미츠히데에 속했다가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 휘하에 소속되었다. 1578년 아마고 부흥군이 망할 때도 당시 하시바군과 동행하고 있어 살아남았다.

2.2. 시카노 성의 성주가 되다

1581년에 히데요시가 모리 가문의 돗토리 성을 함락하자 케타군 13,800석을 받고 시카노 성의 성주가 되었다.

이후 히데요시가 카메이에게 이즈모국의 절반을 주기로 약속했다가 모리 테루모토와 강화를 맺으면서 테루모토에게 그 곳을 양보해 줄 수 없게 되자 다른 땅을 주기로 했는데, 카메이는 류큐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로 인해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던 황금 부채에 류큐를 점령하면 카메이에게 영지를 주겠다는 문장을 새겨 히데요시로부터 황금 부채를 하사받았다. 1588년에는 닛코 연못을 간척하고 카츠미, 아오야, 요고 등 각지에도 개척 사업을 했다.

2.3. 임진왜란 참전

1592년에 군함 5척을 만들고 병사 3천 5백을 인솔해 나고야에서 히데요시를 만났으며, 처음에는 쿠로다 나가마사의 휘하에 소속되라는 명령을 받았다가 큰 공을 세우길 원했으므로 독립된 부대로 활동해 임진왜란에 참전한다. 6월 2일에 당포 해전에 참전했다가 패했으며, 이 때 황금 부채가 노획된 것, 난중일기의 기록에서 한 왜장이 권준이 쏜 화살에 맞아 바다로 떨어졌다가 김완, 진무성이 목을 베었다는 것 때문에 이 때 죽었다고 오인되고 있지만 죽은 자는 도쿠이 미치유키였고 코레노리는 살아남아 육지로 도망갔다.

부산의 기장성을 점령해 그 곳에서 호랑이를 잡아 히데요시에게 보냈는데, 히데요시는 그 호랑이가 드물게 거대한 호랑이라서 고요제이 덴노에게 자랑하고 호랑이를 수레에 싣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1594년에 자신의 영지에서 사철을 채취하고 1595년에 서 호우키의 히노산에서 은광을 발견해 채취했으며, 1596년에는 자신의 영지에서 함부로 자르지 않는 나무를 정해 무분별한 벌채를 하지 못하게 했다. 또 케타, 타카쿠사군에서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성으로 불러 대접해 백성들에게 환영받았다고 하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도 수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2.4. 말년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 때 동군에 참전했고 서군이 패하면서 나츠카 마사이에가 미나쿠치 오카야마 성으로 도망쳤는데, 이케다 나가요시와 함께 미나쿠치 오카야마 성을 공격해 함락했다. 다케다 성의 성주인 사이무라 마사히로와 함께 돗토리 성 주변의 마을을 불태웠고 이 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심기를 건드리자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마사히로를 주모자로 몰았다. 타카쿠사군 24,200석을 추가로 봉해 3만 8천석이 되었으며, 타카쿠사 군의 관개 용수가 불안정해 대규모 수로를 개설하려 했고 이케다 나가요시는 센다이 강의 하구를 항구로 사용하기를 원해 나가요시와 협상해서 영토 교환을 했다.

1607년에 스즈키 하사에몬을 나가사키에 파견해 해외 무역을 했고 1609년에 은거해 아들 마사노리에게 가독을 상속하고 1612년에 시카노 성에서 병사했다.

3. 기타

그가 가지고 있던 황금 부채는 이순신이 선조에게 바쳐 조선 왕실의 비밀 창고에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건축가인 세키노 다다스가 일본 왕실에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카메이는 임진왜란 와중에 조선 국왕의 군대가 사용한 깃발인 조선왕진기를 조선에서 노획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하며, 이 물건은 현대에 일본의 돗토리현 현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607년경 그가 다스리는 시카노 성에 임진왜란 때 데려온 아프리카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4. 미디어믹스

파일:亀井茲矩1.jpg 파일:亀井茲矩.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정치는 그럭저럭 높은 잡장으로 등장.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사실상 단역에 가까운 비중으로 나와서 존재감이 없다. 그래도 후술할 임진왜란 1592와 달리 실제 역사에 맞게 작중에서 죽는 장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가메이의 실제 사망년도인 1612년은 임진왜란이 완전히 끝난지 14년 후라서 적어도 한국 사극에서는 해당 시기에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다룰 일이 없다시피 하다.

임진왜란 1592에서는 제대로 된 비중을 가지고 등장했다. 일본인 배우 야마노우치 타스쿠가 연기했으며, 1화에서는 사천 해전에 출전한 거북선에 대해 듣고 비웃으면서 포로로 잡아온 조선 여자들을 희롱하는 변태 같은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극중에서 히데요시에게 하사 받은 부채를 들고 있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2화에서 전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