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경성(崔景成) |
생몰 | 1883년 1월 13일 ~ ? |
출생지 | 경상도 대구도호부 북상면 남성리 (현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
사망지 | 미상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경성은 1883년 1월 13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북상면 남성리(현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으며, 영일군 포항면에서 거주했다. 1911년 봄, 그는 포항제일교회에서 문맹퇴치를 목적으로 사립 영흥학교(永興學校)를 설립할 때 참여했으며, 1919년 3월 8일 포항면 포항동에서 백기만(白基萬)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다 붙잡혀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6월 3일 김영옥(金泳玉) 등 6인과 함께 발기위원이 되어 지회 설립에 노력하여 7월 22일 신간회 영일지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즈음 포항면 하촌면장(下村面長)이 조선인을 구타한 일이 발생하였다. 최경성은 8월 14일 신간회 영일지회와 포항청년회와 함께 면민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성명서를 인쇄하던 중 포항경찰서의 금지로 부득이 중지하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최경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