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향야(香野) / 청계(淸溪) |
본관 | 평강 채씨[1] |
출생 | 1910년 10월 21일 |
충청북도 진천군 소답면 몽촌리 (현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2] | |
사망 | 1945년 3월 11일 |
서대문형무소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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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채수복은 1910년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소답면 몽촌리(현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에서 아버지 채계석(蔡季錫)과 어머니 광주 반씨 반종익(潘鍾益)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서울 협성실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이 확대되어 서울까지 확대되자 1930년 1월에 동교 학생들을 주도하여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그 후 경찰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다시 그곳에서 일본에 잠입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4년 1월에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에서 경도신문사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3년 경에 다시 체포되었다.[3]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3월 11일에 옥사했다.
그의 유해는 고향에 매장되었고, '애국지사평강채공수복사적비(愛國志士平康蔡公洙福事績碑)'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채수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에 고향에 매장되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