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41:11

채수복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향야(香野) / 청계(淸溪)
본관 평강 채씨[1]
출생 1910년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소답면 몽촌리
(현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2]
사망 1945년 3월 11일
서대문형무소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채수복은 1910년 10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 소답면 몽촌리(현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에서 아버지 채계석(蔡季錫)과 어머니 광주 반씨 반종익(潘鍾益)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 협성실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이 확대되어 서울까지 확대되자 1930년 1월에 동교 학생들을 주도하여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그 후 경찰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가 다시 그곳에서 일본에 잠입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고, 1934년 1월에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에서 경도신문사의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3년 경에 다시 체포되었다.[3]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3월 11일에 옥사했다.

그의 유해는 고향에 매장되었고, '애국지사평강채공수복사적비(愛國志士平康蔡公洙福事績碑)'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채수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에 고향에 매장되었던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했다.


[1] 26세 수(洙) 항렬.[2] 평강 채씨 집성촌이다.[3] 죄명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