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7 16:48:00

집으로 가는 길(중국 영화)

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로고.svg
은곰상 : 심사위원대상
제49회
(1999년)
제50회
(2000년)
제51회
(2001년)
쇠렌 크라그야콥센
(미후네)
장이머우
(집으로 가는 길)
왕샤오솨이
(북경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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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줄거리3. 평가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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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오 쉬의 '회상' 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99년 개봉한 중국의 영화. 원제는 我的父亲母亲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한국에서는 2000년 11월 개봉했다. 장예모 감독. 장쯔이 주연.

도시에 살던 아들(위셩)이 교사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풋풋했던 과거 시절을 회상한다는 내용이다. 장쯔이가 화자의 젊은 시절 어머니(자오디. 영화에서는 애칭으로 디로 불리운다.)로 등장하는데, 학교 선생님을 사랑하여 마침내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다는 것이 결말. 이 점은 같은 해 전도연, 이병헌 주연으로 개봉했던 한국 영화 <내 마음의 풍금>과 비슷하다.[1]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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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999년 도시에서 사는 위셩은 고향에서 교사 일을 하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낡은 학교를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병을 얻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위셩은 마을 촌장을 통해 상황을 전달 받고 아버지의 장례를 장례업체를 이용하여 진행하자고 했으나 어머니(자오디)는 몇 명이 관을 이고 그 뒤로 사람들이 따라가는 전통 방식 장례를 고집한다. 위셩은 어머니의 낡은 베틀을 고치기 위해 간 가게에서 어머니의 의도를 물어보니 베틀 수리공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전통 방식 장례를 고집하는 건 이해하지만, 현재 여기는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 어머니가 원하는 장례 방식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 뒤 위셩은 고향 집에서 수의를 짜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부모님의 결혼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부모님의 연애는 그 당시 온 마을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는 위셩의 독백을 시작으로 과거의 회상으로 넘어가게 된다.[2]

1957년 삼합둔이라는 산골 마을에 사는 자오디는 눈이 잘 안 보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전에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떴을때 너무 울어서 그 후유증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봄 날 도시에서 한 선생님이 오시게 되었고 산골 마을도 활기를 띠게 된다. 선생님이 오셨음에도 학교가 지어지지 않아 마을 내 에 학교를 짓게 되었는데 남자들은 거의 공사에 참여하였고 여자들은 공사 일을 하는 남자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는 일을 하게 된다. 당시 마을에는 수도가 없어서 우물에서 물을 기워다가 사용하였는데 우물은 전장, 후장이 이렇게 있고 전장 우물을 가려면 학교를 지나쳐야 하는데 자오디는 선생님을 보기 위해 무조건 전장 우물로 다닌다. 학교 공사에 참여하는 청년에게 선생님이 뭘 했는지 묻는 등 선생님에 대한 마음은 커져 간다. 심지어 선생님이 처음 보이는 도시락을 집었다는 청년의 말을 듣고 일부러 잘 보이는 자리에 도시락을 갖다 놓았다.[3]

학교가 완공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업을 가르치는데 자오디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좋아하여 학생은 아니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주 학교 주변을 기웃댄다. 이를 안 선생님의 제자들은 자오디의 이런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관심있대!' 이러면서 놀리기도 한다. 하루는 자오디가 우물가에 물을 뜨고 집에 가려다가 선생님이 물통을 짊어지고 우물가에 가려는걸 보고 이미 뜬 물을 도로 우물에 부어버리고 선생님이 오기 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를 본 마을 청년이 선생님이 이런 일을 왜 하냐면서 본인이 물통을 짊어지고 가는데 이를 본 자오디는 심통이 나서 마을 청년한테 대꾸도 안하고 우물가에서 나와버린다.

어느 날 선생님은 자오디의 집으로 점심 식사 초대를 받게 된다. 당시 선생님은 여러 집을 거치며 점심 식사를 하는 상황 이였다. 그러다가 자오디의 집의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위셩은 아버지가 이날 어머니가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너무 아름다워 아버지가 그 모습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한다고 언급하였다. 자오디는 공사장에서 매일 갖다 놓은 그릇을 선생님한테 보여주며 이 그릇을 아시냐고 묻고 그동안 도시락으로 싸준 음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저녁도 꼭 먹으러 오라고 당부한다. 선생님이 버섯만두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자오디는 버섯만두를 만들려고 준비하는데 이를 본 어머니는 선생님과 우리는 수준이 전혀 달라 맞지 않으니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이만 접으라며 야단을 치고 자오디는 시무룩해 한다.

그러나 자오디가 우물가에 물을 뜨러 갔다가 선생님이 어떤 사람이랑 다투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이후 선생님이 자오디의 집에 찾아와서는 모종의 사정으로 갑자기 도시로 가게 되었다며 저녁 식사는 하기 힘들 거 같다고 하였다. 자오디는 그럼 언제 돌아오냐며 묻자 선생님은 정월쯤 돌아 올거라며 자오디의 저녁식사 요청에 알았다면서 자오지한테 잘 어울릴 거 같다며 머리핀을 선물해주고 간다. 자오디는 버섯 만두를 다 만들고 선생님이 다시 오기 만을 기다리는데 이전에 우물가에서 만난 마을 청년이 자오디를 찾아와서는 선생님이 갑자기 떠난다고 알려주고 간다. 자오디는 놀라 선생님이 준 머리핀을 착용하고 공사판에서 도시락을 싼 그릇에 버섯만두를 가득 담아 선생님을 보러 뛰어간다. 마차를 탄 선생님을 쫓아 한참을 뛰다가 그만 넘어지면서 그릇은 깨져 버리고 결국 선생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자오디는 한참을 서럽게 운다. 기운없이 돌아온 자오디는 선생님이 준 머리핀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몇날 며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집 대문 앞에 떨어진 머리핀을 발견하여 다시 본인의 머리에 고정을 시킨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고, 마을에 그릇 수리공이 찾아왔는데 어머니는 수리공을 불러 자오디가 이전에 깨트린 그릇을 고쳐 달라며 요청을 한다. 그릇 수리공은 그릇의 상태를 보더니 이 정도면 사는 게 낫겠다고 하였으나 어머니는 비용은 신경 쓰지 말고 고쳐 달라며 당부한다. 자오디는 부엌에서 고쳐진 그릇을 발견하며 눈물을 흘린다.[4] 그 사이에 학교를 장식한 붉은 장식도 낡아져서 자오디는 아무도 없는 학교로 가서 낡은 장식을 다 뜯고 고쳐 놓는다. 이걸 마을의 촌장이 보게 되었는데 촌장이 알게 되면서 자오디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지게 된다. 이때 아들의 회상으로는 당시 마을에서는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였으나 어머니가 연애결혼의 시점을 열었다고 한다.

정월이 되도록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고 자오디는 선생님을 배웅하겠다며 한파에 나갔다가 몸살에 걸려 끙끙거리는데 이 모습을 본 어머니는 선생님이 일이 잘못되어 언제 올지 모르니 마음에 두지 말라고 말린다. 그러나 낫지 않은 상태에서 자오디는 도시로 가서 선생님을 찾겠다며 나가버리고 어머니는 한파에 무슨 짓이라며 그만 돌아오라며 절규한다. 그러나 자오디는 도시로 가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서 이걸 발견한 마을 사람이 자오디를 안고 돌아오게 된다. 어머니는 촌장에게 선생님은 대체 언제 오시나며 묻지만 촌장도 모르겠다며 난색을 표하고 어머니는 이러다가 딸이 죽겠다며 선생님한테 연락을 해보라며 촌장한테 사정 한다. 자오디는 며칠을 앓아 눕다가 깨어났는데 어머니를 통해 선생님이 자오디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다며 알려주고 자오디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선생님은 자오디의 소식을 듣고 몰래 온거라 그날 저녁에 도시로 다시 떠났고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도시로 왔다 갔다 하였다. 이걸 2년 여간 반복하였고 자오디는 선생님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옷을 입고 길목에서 선생님을 기다렸으며 이날 이후 둘은 부부가 된다.

현대로 돌아와서 위셩은 마을 촌장에게 자오디의 의견을 알려주며 자오디의 의사대로 하고 싶다고 했고 촌장은 그럼 사람을 써야 할 거 같다고 하자 위셩은 돈을 주면서 사람을 고용 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제자들이 전국 각지에 몰려와서 관 운구 행렬을 돕겠다고 했고 촌장은 위셩이 준 돈을 돌려주며 장례를 도와준 모두가 돈을 받지 않겠다며 의사를 전달한다. 위셩의 아버지는 학교가 보이는 뒷산에 묻히게 된다. 여기 근처에는 원래 우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수도가 들어와서 우물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위셩의 독백이 이어 나온다. 이후 자오디는 학교를 위해 쓰라며 그동안 모아둔 돈을 촌장에게 기부하였고, 위셩은 촌장에게 하루만 임시로 선생님을 하겠다며 제안을 한다. 위셩이 마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을 바라보는 현대의 자오디의 모습에서 다시 과거의 자오디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3. 평가

비교적 차분하고 심심한 내용에 전개가 느릿하지만 과거 개혁 개방 이전의 1950년대 북만주 중국 시골의 풍경과 주연 배우들의 리얼한 촌스러움(...), 그리고 순수한 사랑 얘기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자 주인공이 그나마 장쯔이 정도나 되니까 순수한 매력이 보이는 정도이며 남자 주인공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착해 보인다 이상의 평가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4. 기타

  • 아들의 시점은 1999년이고 과거 시점은 1957~1958년이다. 아들의 시점인 현대에서는 흑백으로 표현되지만 부모님의 젊은 시절인 과거의 시점은 칼라로 표현된다. 마지막에 다시 현대로 넘어오면서 흑백으로 바뀐다.


[1] 단 내 마음의 풍금의 여주인공은 늦깎이 학생이고 선생님을 두고 사랑의 라이벌이 등장한다. 반면 집으로 가는 길에 나오는 여주인공은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고 글씨를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이라고 주인공의 아들이 언급했으며, 마을 청년이라는 상대가 등장하지만 여주인공과 엮이는 배경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2] 과거로 넘어가면서 부모님이 나이가 공개되는 데 아버지는 20살 어머니는 18살 이였다고 한다.[3] 원래 다른 사람이 갖다 놓은 도시락이 있었으나 자오디는 해당 도시락을 옆으로 쓱 밀어버리고 본인이 준비한 도시락을 갖다 놓는다.[4] 이전에 어머니는 자오디의 사랑을 반대하였으나 많은 비용을 들며 그릇을 고쳐준다. 즉 딸의 사랑을 인정한 것.[5] 다만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고, 선생이 잠시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나온다. 아마 선생이 대학시절 보인 성향이 우파로 지목받았는데, 당국에 조사받고 별 혐의가 없어 풀려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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