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9 18:46:11

진야지 호랑이 탈출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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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とら)脱走事件
1. 개요2. 사건의 진행3. 사건 이후

1. 개요

1979년 8월 2일 지바현 키미츠(君津)시 소재의 사찰 경내에서 사육하던 호랑이가 탈출하여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사건.

2. 사건의 진행

쇼토쿠 태자가 건립했다고 하며, 관동 지방에서 가장 오래 된 절로 알려진 키미츠시에 위치한 진언종 사찰 진야지(神野寺)에서는 주지 야마구치 쇼도(山口照道)의 취향으로 경내에 십이지원(十二支苑)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동물원을 건설, 호랑이를 비롯해 십이지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동물을 사육하며 1971년 11월 13일에는 '벵가리'라는 이름의 수컷 시베리아호랑이[1]하나와 다른 수호랑이 하나로 호랑이는 수컷 둘만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의 창경원[2] 십이지원에서의 자체적인 번식으로 태어난 암수 한쌍의 남매 호랑이를 기증하기도 했다.[3] 그러던 1979년 8월 2일, 경내에서 사육하던 호랑이 12마리 중 3마리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중 한 마리는 직후에 다시 절로 돌아왔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그대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다음 날인 3일 아침 호랑이가 사라졌다는 주지의 신고를 접수한 지바 현경은 즉각 현지 대책본부를 설치. 경찰 인력에 더해 소방서와 엽우회에도 협조를 요청하여 약 500여명의 인력으로 수색을 진행하는 한편 지역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하고 시내에 호랑이가 탈출했다는 긴급 방송을 내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호랑이들의 탈출로 인해 공포에 빠진 주민들 중 자동차가 없는 일부 주민들은 한동안 생필품도 타 지역에 사는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부탁해서 구입해 와야 할 정도로 진야지 일대는 완전히 마비된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키미츠시 일대의 산에는 덤불이 우거진 곳이 많아 포획이 곤란했고, 마취총을 사용해도 약효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책본부 측에서는 인명피해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최악의 경우 호랑이를 사살해도 무방하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다.

이후 두 마리 중 암컷은 8월 4일 오전에 발견되어 사살되었는데, 이후 대책본부와 엽우회의 엽사들에게 전국 각지의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죽이지 마라', '호랑이가 가엾지도 않느냐'는 등의 항의전화가 빗발치는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탈출한 호랑이가 1살의 어린 개체였다는 점에 더해서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전무했던 시기이다보니 수색에 참가했던 엽우회 회원들의 실명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언론을 통해 이를 접한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전화가 쇄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진야지의 주지까지 '시간에 여유가 있었는데 사살할 것까지는 없지 않았느냐'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엽우회 측에서 격분한 나머지 수색이 일시 중단되기까지 했다.

암컷이 사살된 이후에도 수컷은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으나 20여일이 지난 8월 28일. 한 주민의 집에서 기르던 가 목줄만 남은 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인명피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지바 현경에서는 사격 능력 우수자들을 선별하여 '호랑이 수색 선발대'를 결성하여 엽우회와 합동으로 수색을 벌였다. 그렇게 오전 12시 20분 경에 수호랑이를 발견하여 사살함으로써 사건은 막을 내렸다.

3. 사건 이후

환경성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각 지자체에 맹수 등 위험생물의 사육 및 보존에 대한 조례 제정을 촉구하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위험한 동물의 사육 및 보존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다.

진야지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맹수 사육을 포기하며 한 동물상에게 모든 사육 호랑이들을 넘겼다. 호랑이들을 매입한 동물상은 호랑이들을 홋카이도로 옮겨 홋카이도 토마코마이시의 홋카이도야생동물공원(北海道野生動物公園)[4]에 수용하려 했으나 토마코마이시측에서 호랑이들의 반입을 거부하자 해당 동물상이 인근의 가미카와군 비에이정에 호랑이 테마파크를 건설해 호랑이들을 옮겨 수용할 때까지 홋카이도야생동물공원에 호랑이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것으로 토마코마이시 측과의 계약이 이루어져 호랑이들이 홋카이도야생동물공원에 반입되었지만 비에이정 측도 테마파크 완공 전에 호랑이들을 들여 놓는 것을 거부했고, 오갈 곳이 없어진 호랑이들은 11월 말까지 홋카이도야생동물공원의 임시우리에 수용되어 쇠약해져가다가 동물상이 토마코마이시 측에 별도의 연락없이 호랑이들을 나고야 방면으로 매각했다고 알린 것을 끝으로 진야지 호랑이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5]

한편 1971년 진야지 측에서 창경원에 기증했던 암수 한쌍의 호랑이 중 수호랑이는 '6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74년 3월 6일에 번식을 위해 합사한 '7호'라는 이름의 암호랑이를 물어 죽이고, 1976년 11월 10일에는 호랑이사에 팔을 넣어 과자를 던지던 만취한 관람객의 오른팔을 함께 수용되어 있던 남매 호랑이와 30분간 물어뜯어 절단했다. 1982년 12월 7일에 폐사 후 사체는 박제되어 현재 대전광역시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 중이다.[6]


[1] 이름과 수입 경로로 보아 순혈 시베리아호랑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2] 韓國動物園八十年史 昌慶苑編 p.453[3] 1971년 11월 18일 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창경원에 새식구 일본 야마구찌스님이 보낸 뱅갈산 호랑이한쌍 환영연 즐겨[4] 1979년 4월 28일 개원해 조이랜드 다루마에(ジョイランド樽前)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사자 사파리와 북극곰 전시를 주력으로 삼았던 홋카이도 토마코마이시의 유원지. 1983년 6월 기존 운영사인 도오우(道王)사의 도산 이후 미국 달라스동물원(Dallas zoo)에서 희귀한 동물인 봉고를 들여오고 인도네시아의 라구난동물원(Ragunan Zoo)과 동물을 교환하는 등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결국 자금난으로 1987년 이후 폐업한 상태로 2003년 3월에는 부지에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해 남아있던 구조물 일부가 전소한 것으로 알려져있다.[5] http://www.geocities.jp/kkktkh/joyrepo/joyrepo02.htm[6] https://blog.naver.com/dt644/221193864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