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9:48:05

진계량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진세영(진계량 : 첸지량)
陳世栄 (陳季良)
본명 진세영(첸지량 : 진계량)
陳世栄 (陳季良)
출생 1883년
대청제국 푸젠성
사망 1945년 (향년 62세)
중화민국
직업 해군, 군인
국적 중화민국
파일:진세영.jpg

1. 생애 요약2. 니콜라옙스크 사건과 아무르강 일대에서 활약3. 중일전쟁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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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요약

진세영(陳世栄 = 혹은 진계량 陳季良 : 1883 ~1945) 푸젠성 푸저우 출생,
청나라 강남수사학당 필업.
러시아 적백내전 시기의 니콜라옙스크 사건과, 중국 내전기, 1937년경 중일전쟁 시기에 크게 활약했다.

2. 니콜라옙스크 사건과 아무르강 일대에서 활약

1920년 아무르강 하류 니콜라옙스크 사건 기간중 배수량 550톤 정도의 군함 강형(江亨)의 함장 겸 분함대 영대장.
일본군의 기습공격 당시 파르티잔에 협조하여 함포를 파르티잔들에게 대여했다고 한다.
파르티잔 대장 트리피츤 등은 처형되었으나 진세영(진계량)은 일본군의 재공격에 니콜라옙스크에 있던 중국인 2,000여명과 중국 영사를 피난시키고, 4척의 함대를 아무르강 상류인 하얼빈으로 무사히 이동한다.

1924년경 장령으로 승진한다.
1932년 중화민국 해군 1함대 사령.

3. 중일전쟁 참가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하자, 중국의 대도시 상하이와 수도 난징 방어전에 참가했다.
1937년 8월 12일경 양쯔강 강음해전(江阴海战)에 출전했으나 일본군과의 해전에서 대부분의 군함들을 잃었다.
빠른 속도로 중국을 점령하려던 일본군의 침략을 지연시켰고, 양쯔강을 이용한 상류로의 진출을 저지하는 등 상하이 방어, 난징 방어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