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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지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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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문의 『역학이십사도총해(1697)』 중 「제이황극구천도」

1. 개요2. 역사
2.1. 김석문의 지전설2.2. 홍대용의 지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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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구지전설(地球地轉說)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김석문(1658~1735)이 제창하고 홍대용(1731~1783) 등이 발전시킨 근세 동양의 우주관 및 행성 모델이다.

2. 역사

2.1. 김석문의 지전설

최초로 지전설을 주장한 사람은 포천 출신의 실학자 김석문이다. 그의 본관은 청풍이며, 숙종 시대에 음보로 영소전 참봉에 임명되었고, 1726년에는 통천 군수를 지냈다. 그는 40세가 되던 1697년에 저술한 책 『역학이십사도총해(易學二十四圖總解)』에서 기존의 성리학적 우주관을 보완, 발전시킬 목적의 천체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기존 주자학에서 제시되었던 사유설 등의 우주관에 더해, 당시 예수회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아담 샬과 함께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신부 자코모 로(Giacomo Rho, 나아곡)의 『오위역지(五緯曆指)』에 소개된 서양의 천체관을 공부하고 이를 접목하였다.

『오위역지』에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 체계와 티코 브라헤의 절충적 천동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김석문은 이 가운데에서도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 다섯 개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는 브라헤의 천동설을 수용하면서도 지구가 행성의 중심에서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는 견해에는 반박하였다. 김석문은 저서에서 우주 생성론, 우주 구조론, 운동론, 개벽론의 네 가지 주제에 대해 논리를 전개하였는데, 일정한 주기로 자연 현상과 인류 문명 모두가 흥망성쇠를 반복한다는 순환론적 역사관을 주장하였고, 위도별로 지구와 태양의 각도가 달라 광량에 따른 기후의 변화 및 인문사회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알았으며, 황도와 적도가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그 각도가 일정하지 않고 때때로 달라진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또한 기후 변화에 더해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해저로 가라앉는 지질학적 변동이 일어나므로, 중국이 고대에서부터 융성한 이유가 온화하고 생산량이 높은 지역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미래에는 환경 변화로 인해 얼마든지 쇠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천문학은 과학에 기초한 실용적인 면에서는 한계가 명확하였지만, 중국 중심의 종속적인 우주관에서 탈피하고 조선의 우주관을 넓히려 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2.2. 홍대용의 지전설

이후 홍대용은 그의 저서 『담헌서(湛軒書)』 중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지전설을 발전시켰다. 이 책은 '실옹(實翁)'과 '허자(虛子)'라는 가상의 인물 둘이 대화체로 문답하며 자연의 질서와 우주에 대해 논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