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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초대 연은후 주지련 | 朱之璉 | |
봉호 | 연은후(延恩侯) |
성씨 | 주(朱) |
휘 | 지련(之璉) |
정실 | 불명 |
생몰 | ? ~ 1730년 |
재위 | 초대 연은후 |
1723년 ~ 1730년 |
1. 개요
청나라의 후작이자 명나라 황실의 후손이다.생전에는 단지 후작으로만 봉해졌고 연은후(延恩侯)란 작호는 사후에 덧붙여진 것이다.
2. 생애
1723년 옹정제조 시기 이왕삼각의 예로 일등후(一等侯)에 봉해져 구 명나라 황실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고 팔기군의 정백기 한군에 소속되는 등 청 황실의 예우를 받았다. 그는 평창(昌平)에서 제사를 받들었으며 사망 이후엔 일등연은후(一等延恩侯)로 격상받았다. 그가 역임한 후작은 대대로 세습하여 중화민국 초기까지 이어졌다.다만 중국인들은 주지련이 진짜 명 황실의 자손인가에 대해서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