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20 19:10:28

주지련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81818,#e5e5e5
<rowcolor=#670000>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주지련 주진 주소미 주의봉
<rowcolor=#670000>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주육서 주수길 주수양 주이탄
<rowcolor=#670000>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주서계 주학령 주성단 주욱훈
명 황제 }}}}}}}}}}}}


청 초대 연은후
명 20대 황실 수장

朱之璉 | 주지련
봉호 연은후(延恩侯)
성씨 주(朱)
지련(之璉)
부왕 주전제(朱傳㸄)
모후 불명
정실 불명
생몰 ? ~ 1730년
재위 초대 연은후 | 20대 황실 수장
1723년 ~ 1730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청나라후작이자 명나라 황실의 후손으로 홍무제의 황자 대간왕(代簡王) 주계(朱桂)의 12대손으로, 주이정(朱彝梃)의 손자이고 주전제(朱傳㸄)의 왕자이다.

생전에는 단지 후작으로만 봉해졌고 연은후(延恩侯)란 작호는 사후에 덧붙여진 것이다. 다만 봉사손의 역할은 이후의 연은후랑 동일하기에 초대로 간주되며, 명 황실 전체로는 20대 수장에 해당한다.

2. 생애

1723년 옹정제조 시기 이왕삼각의 예로 일등후(一等侯)에 봉해져 구 명나라 황실의 수장이 되었고 팔기군의 정백기 한군에 소속되는 등 청 황실의 예우를 받았다. 그는 평창(昌平)에서 제사를 받들었으며 사망 이후엔 일등연은후(一等延恩侯)로 격상받았다. 그가 역임한 후작은 대대로 세습하여 중화민국 초기까지 이어졌다.

다만 중국인들은 주지련이 진짜 명 황실의 자손인가에 대해서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