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롭의 영국 런던 작업장 겸 구두점[1]
1. 개요
영국의 가족기업 맞춤화 제작소 및 에르메스의 하이엔드 명품 구두 브랜드. 1849년 설립되었다.[2]현재는 '존롭 유한회사(John Lobb LTD)'와 '존롭 부트메이커(John Lobb Bootmaker)'의 2개가 존재하는데 전자는 설립자 존 롭이 창업한 맞춤화 생산 가족기업[3], 후자는 에르메스가 전자로부터 사명이용권을 받아 기성화를 판매하는 브랜드이다. 원래는 전자의 이름이 '존롭 부트메이커'였으나 현재는 에르메스쪽으로 넘어간 상태.
2. 역사
창립자 존 롭은 1829년 영국 콘월 지방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당한 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농부 대신 제화공의 길을 택했고 고향에서 5년간 수습생을 하며 제화기술을 배웠는데, 자신이 만든 장화를 신고 런던으로 상경하여, 토마스라는 당시 런던에서 제일 가는 구두 제작자를 찾아갔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쫒겨났다고 한다. 이에 당시 금광 개발로 인해 사람들이 모여들던 호주 시드니로 이주하여, 1849년부터 광부용 장화를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1862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승마용 구두를 출품해 메달을 받았고, 1863년에는 이를 당시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에게 헌정하여 왕실 인증 구두 제작자라는 인증서를 받았다. 1866년 자신의 스토어를 런던에서 개점하였으며 "King of bootmaker"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1895년 존 롭이 사망한 후, 둘째아들 윌리엄[4]과 며느리 벳시가 이어받아 1902년에는 프랑스 파리에도 숍을 열며 해외진출을 시작했고 기성화도 만들었지만 사업적으로는 모두 실패했다. 1916년 윌리엄이 사망했고 재정이 궁핍해져 벳시 롭은 집에 하숙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는 제화기술자였던 벳시의 첫째아들 윌리엄이 징집당하고[5], 회사가 폭격으로 파괴되는 등의 수난을 겪으면서, 징집을 피한 둘째 아들 에릭 롭[6]과 어렵게 회사를 이끌어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1945년에 전쟁이 끝나 회사로 돌아온 윌리엄 롭이 윈저 공을 위해 몽크스트랩 스타일의 구두를 개발했는데 이는 그가 군에서 제작하던 특수구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고, 이 제품은 '윌리엄'이라 불렸다. 1956년에 벳시가 사망하자, 그녀의 아들 에릭과 윌리엄이 사업을 물려받았다.
1976년 프랑스 고급브랜드 에르메스에서 존롭의 프랑스 지점의 지분 대다수를 에릭 롭으로부터 인수하며 Hermes' John Lobb을 런칭했다. 계약은 3번 진행되었는데, 1976의 첫 계약에서는 영국의 존 롭이 영국에서의 상표권을 가지며, 에르메스가 존 롭 프랑스의 상품권을 가진다. 이후 에르메스는 상표권 보호를 위해 해외의 다른 국가에도 상표권을 등록했고, 10년간 존롭에 매출일부를 나누었다.
1992년의 2번째 계약에서는 에르메스의 상표권 보호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영국 존롭의 상표권이 수제화의 제작과 판매에만 미치는 것으로 계약되었고 에르메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기성화를 팔수 있게 되었으며, 에르메스는 영국에서 수제화를 팔지 않기로 했다.
2번째 계약은 15년 후인 2007년에 만료되기로 되었으며, 새로운 논의를 시작한다. 2008년의 3번째 계약에서는 존롭이 영국에서만 사업을 하고, 벨트, 케이스, 승마 악세서리, 신발 관리용품에 대해서도 존롭의 권리를 인정했다. 이 계역은 2017년까지 지속되며, 에르메스는 10년간 존롭에게 댓가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잘 지내고 난 이후, 2017년에 존롭은 3번째 계약이 무효이므로 에르메스가 상표권의 수익화에 대한 권리가 없다면서 무효 소송을 제기한다. 링크
2022년의 결과는 존롭이 1심에서 이겼으나, 2심에서 뒤집혔다. 에르메스는 영국에서의 수제화 사업을 하지 않았으므로 에르메스에 귀책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영국 존롭이 최근 영국 럭셔리 비스포크 메이커들이 하는 것처럼 중국, 독일, 일본 같은 곳에 현지 샵을 내기는 커녕 직구 장사조차 할 수 없게 되자, 무리수를 둔 것이었다. 존롭은 에르메스에게 라이센스 비를 받는 대신, 상표권을 돌려받아서 직접 사업하길 원했다.
에르메스 역시 계약에서 10년간의 라이센스 비를 내기 시작하는 기준 시기를 정하지 않는 실수를 했으므로, 존롭은 기준 시기를 계속 갱신하면서 더 많이 벌면 추가금을 갈취할 수 있는 양아치 짓도 가능했고, 혹은 계속해서 계약을 갱신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외부 전문가들이 보는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고 하나, 존롭의 법률 자문이 된 존롭 가문 출신 변호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무효 소송을 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패소가 확정되면 존롭은 에르메스에게 재 계약을 요청해야 하고, 에르메스가 거절하면 존롭 프랑스의 남은 지분을 팔든가, 해외 상표권을 완전히 잃든가의 두 가지만 남게 되었다. 에릭 롭을 제외한 가문 구성원들이 보유한 존롭 프랑스의 남은 지분 1만주는 에르메스에게 우선권이 있다.
그런 탓에 현재 '진짜' 존롭은 여전히 가족기업이고 제작소에는 창립자 '존 롭'이 걸을때 사용하던 지팡이도 남아있다. 존롭은 영국 런던 제작소에서 맞춤으로만 생산되고, 영국 현지에 가야 맞출 수 있다. 미래는 어떨지 모른다.
3. 특징
맞춤제작인 존롭 유한회사의 경우, 비스포크 구두를 전통적인 제작 방법으로 제작하며, 외장재는 물론 내장재 역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웬만한 고급 구두도 완충재로는 접착제를 섞은 분쇄 코르크를 사용하는 반면, 이쪽은 통짜 코르크나 말총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천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렇게 해도 가성비가 좋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반면 에르메스의 존롭은 기성품이며 의외로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사실 존롭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면 생산비가 좀 더 들더라도 'Made in England'가 찍혀 나오는 것이 나은 선택일 것이다. 외장재의 품질이나 가죽가공기술은 좋지만, 내장재나 작업방식은 전통적인 수제 구두와는 거리가 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두 전문 브랜드도 아니면서, 형편없는 수준의 외주제품에 겉에 커다랗게 자신의 로고를 달아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는 흔해빠진 패션명품 구두들보다는 낫다는 평이다.
4. 유명 고객
영국의 대표 구두 브랜드답게 많은 영국 왕실을 포함하여 유명인들이 신었다.동영상[1] 존롭은 오직 저곳에서만 신발을 만든다. 별도의 지점은 전혀 없다.[2] 1849년은 호주에서의 창립연도이며, 영국 런던에 개업한 것은 1866년.[3] John Lobb LTD는 워낙에 보수적인 영세한(...) 가족기업이다 보니 사이트가 에르메스의 것에 비해 매우 허접하다. 이는 영국의 오래된 양복점과 가죽세공사들도 겪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당장 새빌가의 창립자라 불리는 헨리 풀도 2019년 말까진 매우 허접한 사이트를 운영했다. 에르메스는 런던지점 사이트까지 따로 만들었으므로 유의해야한다. 또한 존롭 유한회사는 여전히 가족기업 맞춤화 제작소이므로 기성화는 안 만든다. 여기서는 대략적인 스타일과 역사만 보여준다.[4]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존이었는데, 사고를 쳐서 쫒겨났다고 한다. 다만 동생인 윌리엄과는 사이가 좋았는지 계속 교류했다고.[5] 그래도 제화기술을 인정받아서 일선으로 끌려나가지는 않았고, 군에서 비행사나 특수부대원용 구두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6] 아마도 벳시는 첫째 윌리엄이 생산을, 둘째 에릭이 경영을 맡는 공동경영체제를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에릭 롭은 제화를 배우지 않고 대신 대학을 나왔는데, 그 대학의 이름은 바로 옥스퍼드. 몽크스트랩 vs 옥스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