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년에 조휘가 죽자 작위를 계승해 동평왕이 되었고 식읍이 계속 증가해 3천 4백호가 되었는데, 위나라가 멸망하고 서진이 건국되자 음구공에 봉해졌다. 뜸 뜨는 법을 연구해 최초의 침구전문서라 전해지는 의서인 조씨구경을 저술했지만 그의 저서는 사라졌다고 하며, 수서 경적지, 강남통지, 십이경명당언측인도 등에 그가 저술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해한식산방이라는 책도 저술했지만 그의 저서는 모두 소실되었는데, 황보밀과 함께 썼던 책이 함께 지금도 존재한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적어도 당대에 소실된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이후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진의 갈홍, 당의 왕도 등과 함께 뜸법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