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998><colcolor=#ffffff> 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회장 조중건 趙重建|Charlie Cho | |
파일:조중건.jpg | |
출생 | 1932년 12월 29일 ([age(1932-12-29)]세) |
서울특별시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양주 조씨 |
직업 | 기업인 |
학력 | 중앙고등학교 (졸업) UC 버클리 (수송학 / 학사) 서남침례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 서강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 |
부모 | 아버지 조명희(1895 ~ 1971)[1] 어머니 태천즙(1895 ~ 1971) |
형제자매 | 형 조중훈 |
배우자 | 이영학[2] |
자녀 | 1남 3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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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전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회장.2. 약력
- 1932. 출생
- 1953. 미국동성훈장 수상
- 1959. UC 버클리대 졸업 (수송학 / 학사)
- 1977. ㈜한진개발 사장
- 1981. 오스트리아 연방공화국 은조공로훈장 서훈
- 1982. ㈜ 대한항공 부회장
- 1984. ㈜ 대한항공 사장
- 1987. UC 버클리 대학재단 이사
- 1989. I.O.C 훈장 서운
- 1993. 오스트리아 최고운장 수상 및 모로코 왕국 최고훈장 수상
- 1994. 한국항공 회장
- 1997. ㈜ 대한항공 고문
3. 생애
1932년에 태어난 조중건은 6·25 전쟁 당시 통역과 포병장교로 참전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유학했다. 1959년 귀국 후 한진에 합류하여 회사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며 '항공업계의 대부' 혹은 '한진그룹 2인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유학 당시 쌓았던 뛰어난 영어 실력과 유연한 대인관계로 한진 그룹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미군사업 수주액도 1959년과 1960년 각각 100만 달러, 220만 달러로 뛰었다. 220만 달러는 1960년 우리나라 총수출액(3280만 달러)의 6.7%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대한항공 인수 후 5년 만에 흑자를 달성하고, 국제선 노선을 확장시켜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5년, 그는 한진을 떠나 하와이로 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를 졸업한 후 서남침례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각각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평생을 대한항공의 발전에 헌신한 그는 대한항공 사장과 부회장을 거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한국-오스트리아 경제협력 위원장, 한미 경제협의회 부회장, 한일 경제협의회 부회장, 한소 경제협의회 부회장, 전국 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다양한 경제 관련 직책을 맡으며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소련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항공 노선을 개척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화암 장학회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대한탁구협회, 승마협회, 테니스협회 회장을 맡아 비인기 종목의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이 외에도 그는 미국 동성 훈장, 은탑 산업 훈장, 오스트리아 연방공화국 은조공로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수여받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4. 저술 활동
4.1. 저서
- 《창공에 꿈을 싣고》, 선미디어, 200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