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3:35:35

조시아 윌러드 깁스

파일:Josiah_Willard_Gibbs_-from_MMS-.jpg

Josiah Willard Gibbs. (1839-1903)

1. 개요2. 생애3. 업적

1. 개요

미국물리학자, 화학자.

2. 생애

상류층 출신이다. 그의 조상들 중 모계쪽 조나단 딕킨슨 목사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설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새뮤얼 윌러드는 임시 하버드 대학 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이자 예일 대학교 신학 및 언어학 교수인 조사이어 윌러드 깁스 1세[1]였다.

조상들 중 유독 목사가 많이 눈에 띌 텐데 계몽주의와 그 여파로 인한 성직과 세속 학업의 분열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옛날에는 성직자가 곧 지식인이었다.

집안은 돈도 많았다. 깁스 집안은 단순히 지식인 가문이 아니라 상당히 부유한 가문이었다. 1903년 깁스가 사망했을 때 남긴 재산은 당시 돈으로 10만 달러, 오늘날 화폐가치로 300만 달러 정도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재산은 교수 월급 받아 모은 것이 아니다. 깁스가 예일대에서 교수된 지 10년 후에 연봉이 2000달러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깁스의 유산은 10년차 교수 연봉 50년치에 해당하는 돈이다. 애초에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단 소리. 이때는 돈 있는 집안 출신이어야 고등학교 가고 대학가고 박사 받고 고학력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시대다.

3. 업적

루트비히 볼츠만과 더불어 열역학통계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과학자로, 열역학의 함수들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여 학문적으로 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애초에 통계역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사람이 고안했다고도 한다.

앙상블이라는 개념 그 자체[2], 깁스 자유 에너지, 깁스-듀헴 방정식, 깁스 삼각형 등으로 유명하다.

또, 올리버 헤비사이드와는 독자적으로 벡터 미적분학을 정립하고 전자기학에 적용하였다.


[1] 아들에게 그대로 같은 이름을 물려주었으며, 따라서 이쪽은 조사이어 윌러드 깁스 2세가 된다.[2] 단, 바른틀 앙상블의 경우 원래는 볼츠만이 처음 언급하였지만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듬고 집대성한 것이 깁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