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한국 근현대 불교의 대표적인 선사로, 경허·만공·혜월로 이어지는 선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의 정통을 이어받아 화두선 수행의 정수를 전파했으며, 전국의 주요 선원을 지도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특히 당시 6대 선지식으로 꼽히는 혜월, 혜봉, 용성, 한암, 만공, 보월 모두에게서 견성을 인가받았다는 점과 송담 스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1]1898년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난 그는 해인사에서 인공·제산·응해 스님에게 출가하여 법명 영신을 받았다. 이후 강원을 수료하고,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가면서 엄격한 참선 수행을 이어갔다. 1921년 정혜사에서 백일 안자며 수행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 한암·용성·혜월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으며, 만공 스님에게서 ‘판치생모’ 화두를 중심으로 한 깨달음과 함께 정식으로 전법게를 받고 법맥을 잇게 되었다.
전강 스님은 전국 각지의 선원에서 조실을 맡으며 활발한 수행 지도를 펼쳤다. 통도사, 김천 수도선원, 대흥사, 동화사, 범어사, 천축사 등에서 조실로 활동하며 선풍을 진작했고, 1969년에는 용주사 중앙선원을 창설하여 조계종단의 중앙 선원 체계를 갖추는 데에도 기여했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 시절 광주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송담 스님의 수행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법과 계율을 중시하며 율학과 역경에도 힘썼고, 선과 농사를 병행하는 선농일치 사상도 실천에 옮겼다.
1975년 5월 23일, 전강 스님은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시자와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좌탈입적하였다. 열반에 이르는 순간까지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는 생전에 법랍 62년, 세수 78세의 삶을 오직 참선과 불법 전파에 바쳤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한국불교 수행 전통을 계승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특히 송담 스님을 비롯한 많은 제자들에게 전통 선법의 정수를 전했다.
2. 법맥
세대 | 이름 |
1세 | 경허 스님 (鏡虛, 1849~1912) |
2세 | 만공 스님 (滿空, 1871~1946) |
3세 | 전강 스님 (田岡, 1898~1975) |
4세 | 송담 스님 (松潭, 192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