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탱리고도선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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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저제후선우(且鞮侯單于) |
성 | 난제(攣鞮) |
휘 | 저제후(且鞮侯)[1] |
생몰기간 | 기원전 ???년 ~ 기원전 96년 |
재위기간 | 기원전 101년 ~ 기원전 96년 |
즉위 초기에는 한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하였지만 한나라에서 중랑장 소무를 보내어 많은 패물을 보내는 등 달래려는 시도를 보이자 한나라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기원전 99년에 한나라의 장수인 기도위 이릉이 거연 북쪽으로 나갈 때 이릉이 이끄는 군사와 마주치게 되면서 이들을 포위하여 이릉을 항복시키고 그를 귀하게 대하면서 자신의 딸을 이릉에게 주었다.
기원전 97년에 이광리가 기병 6만, 보병 10만을 이끌고 삭방에서 출격하자 여오수(울란바토르의 툴라 강으로 추정) 북쪽에서 매복하여 이광리와 10여 일 동안 싸워 물러나게 하였으며, 기원전 96년에 사망한다.
[1] 사마정(司馬貞)의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따르면 且의 음은 子와 餘의 반절, 鞮의 음은 低(상고음 제)이다. 즉 '저제후'라고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