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 탱리고도선우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5px;" | 흉노(묵돌 이전) | ||||
불명 | |||||
□□선우 | |||||
흉노 · 동흉노 | |||||
제1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두만선우 | 묵돌선우 | 노상선우 | 군신선우 | 이치사선우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
오유선우 | 오사려선우 | 구려호선우 | 저제후선우 | 호록고선우 |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호연제선우 | 허려권거선우 | 악연구제선우 | 호한야선우 | 복주루약제선우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수해약제선우 | 거아약제선우 | 오주류약제선우 | 오루약제선우 | 호도이시도고약제선우 | |
제21대 | |||||
오달제후선우 | |||||
북흉노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포노선우 | 우유선우 | 북선우 | 어제건선우 | 북선우 | |
남흉노 |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혜락시축제선우 | 구부우제선우 | 이벌어려제선우 | 혜동시축후제선우 | 구제차림제선우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
호야시축후제선우 | 이도어려제선우 | 휴란시축후제선우 | 안국선우 | 정독시축후제선우 |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만씨시축후제선우 | 오계후시축제선우 | 거특약시축취선우 | 호란약시축취선우 | 이릉시축취선우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도특약시축취선우 | 호징선우 | 강거선우 | 특지시축후선우 | 호주천선우 | |
비정통 | |||||
좌곡여왕선우 | 좌대장선우 | 도기선우 | 호걸선우 | 거리선우 | |
오자선우 | 윤진선우 | 이리목선우 | 효선우 | 순선우 조 | |
순선우 등 | 수복선우 | 욱건좌현왕 | 차뉴선우 | 하뇌두선우 | |
조홍선우 | 봉후선우 |
칭호 | 만씨시축후제선우(萬氏尸逐侯提單于) |
성 | 난제(攣鞮) |
휘 | 단(檀) |
생몰기간 | ??년 ~ 124년 |
재위기간 | 98년 ~ 124년 |
남흉노의 제11대 선우이자 호야시축후제의 아들로 이름은 난제단(欒提檀).
98년에 정독시축후제가 죽자 선우가 되었으며, 매년 군사를 보내 난제봉후를 공격해서 다수를 노획하고 그 전후로 수천 명의 포로를 거두고 돌아왔다. 109년에 한나라로 가서 안제를 조현하고 한종의 권유에 따라 겨울에 오환과 함께 한나라를 배반하고 미직에서 경충을 공격해 포위했다.
경충을 여러 달 포위했다가 양근, 경기 등이 속국의 고성에서 별동부대를 거느린 장수를 공격해 죽이자 직접 7, 8천 기병을 거느리고 전투에 나서서 양근을 포위했는데, 양근이 분전해서 격파되자 호택으로 돌아갔다. 110년 2월에 1천여 기를 보내 상산, 중산 등을 침입하게 했다가 양근, 경기 등에게 격파되었으며, 방웅, 양근, 경충 등이 1만 6천으로 호택을 공격하자 두려워했다.
한종을 꾸짖은 뒤에 3월에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하면서 모자를 벗고 맨발로 방웅에게 절하면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했으며, 한나라에서 그를 용서하고 예전처럼 대우하자 초략한 한인, 강족이 초략했다가 흉노로 팔려온 자들을 합쳐 1만여 명을 되돌려보냈다.
124년에 사망해 동생인 난제발이 계승해 오계후시축제 선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