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8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정희성[1]의 참여시.2. 시 전문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3. 시인의 말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주로 내가 사는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관해 써왔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러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며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 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나는 믿는다.4. 평가
민중시가 나아가야 할 모델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작가의 신념과 역사의식을 강조하지 않고 민중의 삶의 현장을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시적 화자의 목소리와 시적 상황과의 괴리감이라는 민중시의 한계를 극복해낸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5. 해설
이 작품은 노동의 현장에서 비롯된 구체적 삶의 경험을 '강'이라는 자연물의 심상과 결합시켜 시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형식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삶의 진실추구라는 감성의 역동성을 동시에 확보한 참여시이다.전16행 단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로 내재율을 지니고 있다. 시의 주된 제재는 강물이며, 주제는 강물에 삽을 씻으며 느끼는 인생의 의미 또는 도시 노동자의 비애라고 할 수 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궁극적 가치를 반추하는 중년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아픔을 차분하고 단아한 어조로 그려낸 서정시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저문 강(중년의 삶)', '썩은 물(비판적인 세상)', '흐르는 물(민중의 한과 비애)' 등에 사용된 상징적인 시어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연의 구분이 없는 단연시이지만 의미상 네 단락으로 구분된다.
5.1. 행별 해석
제1∼4행에서는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강물에 삽을 씻으며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제5∼8행에서는 적극적인 현실 극복의 의지를 상실한 채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힘없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제9∼12행에서는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가는 고단한 노동자가 비록 썩은 물일지라도 그 강에 비친 달빛에 하루의 피곤과 우울한 심경을 위로받으며 내일의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해내고 있음을 노래한다.
제13∼16행에서는 사람들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차분한 자기확인의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고단한 삶이지만 버릴 수 없는 인생에 대한 따뜻한 긍정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자각을 보여준다.
[1]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우리시대의 노동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