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남군(河南郡) 양책현(陽翟縣) 사람으로 도량이 있고 유능하다고 일컬어졌고 260년에 왕침이 예주자사로 부임하자 저략은 주부를 지냈다. 왕침이 백성과 병사들에게 관리의 잘못이나 백성들의 걱정을 말하는 자에게 500곡의 곡식을 주고 자사의 잘못이나 조정이 하는 일의 관대함과 엄격함을 비판하는 자에게 곡식 1천 곡을 줄 것이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러자 저략은 진흠과 함께 왕침이 내린 칙령에 대해 자신을 잘 간수하려는 자는 상을 받는 것을 꺼려서 말하지 않을 것이며, 탐욕스러운 자는 이익받을 것으로 인해 악용할 것을 우려를 진언했다. 왕침이 윗 사람이나 아랫 사람에게 좋은 일이라 시행하는 것을 말하자 저략은 충성스럽고 곧은 말을 좋아한다면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달려올 것이고 덕이 부족하다면 많은 상금을 걸어도 충성스럽게 간하는 말은 이르지 못할 것이라 진언해 왕침이 그만두게 했다.
집이 가난해서 사퇴했고 양호와는 옛 친구였으며, 50세에 양호가 진남장군일 때 천거되어 상서가 되었다고 하며, 사마유를 봉지로 내쫓는 사건이 일어날 때 유순 등을 재판하는 논의에서는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상서 주정과 함께 올렸다. 상서령 위관과 함께 우부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고 상서 곽혁과 함께 외척인 양준은 그릇이 작기 때문에 사직의 중임을 맡겨서는 안된다고 상소를 올렸으며, 왕혼의 후임으로 285년에 도독양주제군사가 되었고 안동장군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