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2 21:48:23

장기영(삼국지)

張琪瑛
(196년 ~ 217년)
1. 개요2. 행적3. 야사 및 전설4. 기타5. 창작물에서

1. 개요

후한 말의 여성이자 장로의 딸로 기영은 라는 설도 있다. 예주 패국 풍현 사람.

2. 행적

마초가 장로에게 의탁했을 때, 장로는 딸을 마초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마초가 가족을 아끼지 않는다고 반대하자 그만두었다.[1] 215년, 장로는 가족을 데리고 조조에게 항복했고 장로의 딸은 조조의 아들 조우와 결혼했다.[2] 장로의 딸이 몇명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장기영이 정말 조우와 결혼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장기영은 2년만에 죽었고 조우의 아들 조환은 246년생이기에 설령 두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도 장기영이 조환의 친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야사 및 전설

전설에 따르면 장기영은 마초가 그리워 조우에게 시집가기 싫어 결혼을 거절했으며 장로가 조조에 따라서 북쪽으로 옮길 때에도 따르지 않고[3] 면양(면현)에 머물며 관자산에서 오두미도를 이어왔다고 한다.

도가잡기(道家雜記)의 기록에 따르면 장로의 딸은 산 아래 옷을 다 입고 흰 안개에 끼어 임신한 적이 있다. 당시 장기영은 시집을 가기도 전에 임신이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자살했다. 죽기 전에 여종에게 배를 가르게 하니, 2명의 용이 있었다. 장기영이 묻힌 후 두 용이 장기영의 묘소 앞까지 왔다는데, 그 무덤 앞에는 한 줄기 개울이 형성돼 한수에 흐른다고 한다. 여랑사에는 장기영이 낳은 청룡태자, 황룡태자가 문 옆에 그려져 있다.

4. 기타

파일:장기영무덤.jpg

면현에서 동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관자산 정상에는 옛 묘(廟) 30여 칸과 소상(塑像), 벽돌탑, 비갈(碑褐) 등이 있다. 중국 정부는 1985년에 장기영의 무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한중시는 2000년 묘를 시급 1차 중점문화재 보호단위로 확정하고 보호표지를 세웠다. 2001년, 면현 온천진 정부, 면현 박물관은 산 정상에 묘정을 짓고 묘비를 세웠다.

장로의 딸의 이름은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국 섬서성 면현 온천진 광명촌에 현존하고 있는 2001년에 세워진 장로의 딸 무덤의 묘비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이름은 장기영(張琪瑛), 건안 원년인 196년 출생, 건안 22년인 217년 사망했고 죽은후 한중으로 돌아와 묻혔다고 적혀있다.

장기영 묘는 '여랑사(女郎祠)'라고도 불리며, 묘장 주소가 있는 산을 '여랑산'이라 하고, 산 아래 도로를 '여랑도'라고 한다. 장기영이 장로 딸의 본래 이름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랑'이라는 단어는 엄연히 장로 딸의 것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마초는 한수 북쪽 기슭, 한중 면현의 뇌공산 아래에 묻혔는데 마초 묘는 장기영 묘와 한수를 사이에 두고 10여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5. 창작물에서

'백화요란 대전란!! 삼국지 배틀', 삼국지대전에서 등장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5, 무용 34, 지모 48, 정무 49, 인사 67, 외교 57의 능력치로 195년생으로 나온다.


[1] 출처: 마초전 주석 전략.[2] 출처: 장로전.[3] 혹은 북쪽에서 한중으로 돌아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