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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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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nopad>파일:83987237810723.jpg[1]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작가 에리히 프롬
장르 철학서
언어 영어
발매일 1941년

1. 개요2. 내용
2.1. 자유에 대한 문제2.2. 자유의 양면성2.3. 도피의 메커니즘
2.3.1. 권위주의2.3.2. 파괴성2.3.3. 자동인형적 순응
2.4. 역사로 본 자유의 두 측면
2.4.1. 종교개혁 시대2.4.2. 근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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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1941년에 출간한 책.

2. 내용

2.1. 자유에 대한 문제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인간을 속박해온 정치적ㆍ경제적ㆍ정신적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새로운 자유를 원하는 피압자들이 특권을 지키려는 자들과 맞선 싸움이었다. 어떤 계급이 지배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우는 동안, 그들은 인간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하나의 이상, 즉 억압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이 뿌리내린 자유에 대한 갈망에 호소할 수 있었다.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자유는 승리를 거듭해왔다.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마지막 전쟁으로 여겼고, 전쟁이 끝난 것은 자유의 궁극적인 승리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된 것처럼 보였으며, 새로운 민주정치는 낡은 군주 정치를 대치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인간이 수백 년에 걸친 투쟁으로 얻었다고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파시즘 체제의 승리가 소수의 광기 때문이고, 그 광기 때문에 그들은 조만간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주장의 오류가 분명해졌다. 수백만의 독일인들은 그들의 선조가 자유를 위해 싸운 것만큼 열정적으로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 그들은 자유를 원하기는커녕 자유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았다는 것, 나머지 수백만의 독일인은 거기에 무관심했으며 자유를 지키는 일이 싸우다 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몇몇 국가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모든 근대 국가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존 듀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지칠 줄 모르는 권력욕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파시즘의 매력을 이해하려면 심리적 요인들의 역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정치 체제는 본질적으로 이기심이라는 합리적인 힘에 호소하지 않고,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을 인간에게 불러일으키고 집결시키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은 그 비합리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들도 개인이 외부 세계에서 받은 영향, 특히 어린 시절에 받은 영향에 대한 반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심리학의 주요 문제는 어린 시절 이런저런 본능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 간의 유동적인 관계 사이에서 여러 충동들이 생겨나고 이것들은 거꾸로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쳐서 경제적ㆍ심리적ㆍ이념적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의 기본 바탕이다.

2.2. 자유의 양면성

자유란 무엇인가? 아이가 태어나 어머니와 생물학적으로 분리되고 나서도, 아이는 기능적으로는 상당히 오랫동안 어머니와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원초적 유대'는 개성의 부족을 암시하긴 하지만, 아이에게 안도감과 소속감,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자유와 독립을 추구함에 따라 원초적 유대도 점차 끊어진다. 이 '개체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아이는 그 자신의 개성을 제한하던 원초적 유대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자아를 발달시키고 표현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초적 유대에서 벗어날수록 자기가 혼자라는 것, 다른 모든 존재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 분리 과정에서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을 키울 수 있다면 타인에게 새로운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러지 못한다면 이러한 분리가 결국 참을 수 없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낳게 될 것이다.

사랑과 일 속에서 자신의 감정적ㆍ감각적ㆍ지적 능력을 진정으로 표현하면서 바깥 세계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그리하여 본래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지 않고도 인간과 자연 및 그 자신과 다시 일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자아가 내면적인 힘과 생산성을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체화 과정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면, 자아의 성장은 수많은 개인적ㆍ사회적 이유로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개체화 과정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상황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자유는 도리어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럴 때 어떤 사람이나 세계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복종의 관계 속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그는 더 큰 힘에 종속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버리거나,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말함으로써 개성과 자아의 본모습 자체를 아예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대개 강박적이거나 자동적인 행동만 되풀이하는 생활로 그 대가를 치른다.

2.3. 도피의 메커니즘

2.3.1. 권위주의

2.3.2. 파괴성

2.3.3. 자동인형적 순응

2.4. 역사로 본 자유의 두 측면

2.4.1. 종교개혁 시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과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세에는 모든 사람이 사회 체제 안에서 자신의 역할에 묶여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어떤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어떤 도시나 나라에서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하기는 어려웠다. 인간은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혼자 고립되어 있지도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바꿀 수도 없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확실한 자리를 사회에 갖고 있으면, 인간은 구조화된 전체에 뿌리를 박았고, 따라서 삶은 의심할 여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람은 사회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과 동일시되었다. 사회 체제는 자연적 질서로 여겨졌고, 그 체제의 확실한 일부가 되는 것은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다. 경쟁은 비교적 적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정한 경제적 지위를 가졌고, 그 지위에 따라 전통적으로 정해진 생계를 보장받았지만,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사회는 그렇게 구조화되었고, 인간에게 안전을 제공했지만 한편으로는 속박했다. 중세의 인간은 아직 자신을 개인으로 생각지 않았고,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통해서만 자신을 인식했다. 인간은 또한 타인들도 '개인'으로 생각지 않았다. 자신의 개인적 자아와 타인 및 세계를 별개의 존재로 보는 의식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 말기에 사회 구조와 인간의 성격이 바뀌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중세 사회의 통일성과 중앙집권은 점차로 약해졌다. 자본이나 개인의 경제적 자주성이나 경쟁이 점점 중요해졌다. 새로운 유산계급이 생겨났다. 새로운 경제적ㆍ문화적 발달은 다른 지역보다 이탈리아에서 한층 더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중세의 사회 구조가 이처럼 점진적으로 파괴된 결과,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출현했다. 개인주의는 모든 사회 계급에서 뚜렷이 성장했고, 인간의 취미와 패션, 예술과 철학과 신학 등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이 물결 속에서 소수의 부유하고 강력한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경제 활동과 부를 통해 자유를 느끼고 개성을 의식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은 무언가를 잃었다. 그것은 중세의 사회 구조가 제공했던 안전감과 소속감이었다. 그들은 이제 더 자유로웠지만, 더 외롭기도 했다. 그들은 격렬한 자기중심주의, 권력과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에 사로잡혔다. 이리하여 '명성에 대한 강한 열망'이 그들의 특징적인 성격이 되었다.

그렇지만 막스 베버가 입증했듯이, 르네상스는 단지 상업ㆍ산업 자본주의가 발달한 시기였을 뿐이고, 서양에서 본질적으로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만들어낸 것은 이탈리아의 소수의 부유한 개인이 아닌, 중유럽과 서유럽의 다수의 도시 중산층들이었다. 중세의 사업은 주로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규모 장사에 불과했지만, 14~15세기에 들어서 국내적ㆍ국제적인 상업이 급속히 성장하자 중소 상인들은 몰락하고 독점 기업으로 발전하는 거대 회사들이 많아졌다. 자본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되면서, 전통적 지위가 보장해주는 고정된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와 함께 1분 1초를 귀중하게 여기는 근면 정신이 생활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능률이라는 관념이 최고의 도덕적 가치의 역할을 맡았다. 개인은 외톨이가 되었고, 모든 것은 개인 자신의 노력에 좌우되었다. 낙원은 영원히 사라졌고, 개인은 혼자서 세계와 맞선다. 그는 무한하고 위협적인 세계 속에 내던져진 이방인이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고, 위험도 이익도 모두 그의 것이 되었던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거대 자본에 대한 이러한 중산층의 근면한 내적 복종의 성격은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가 먼저 만들어낸 것이다. 그전 중세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 그리고 인간의 노력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신과 인간의 유사성을 강조했고, 인간이 신의 사랑을 확신할 권리도 강조했다. 반면에 루터는 인간이 사악하고 잔인한 본성을 갖고 있어서 인간의 자유 의지로는 이를 바꾸고 구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오직 신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고 인간의 교회는 원칙적으로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단지 '개인의 믿음'으로서 신의 은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교리는,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게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믿음과 구원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생각하게끔 만듦으로써 루터는 교회의 권위를 박탈하여 종교 문제에 있어서 인간에게 독립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는 개인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는 다른 측면도 있다. 확실성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회의를 극복하려는 욕구에 뿌리박고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고립된 개별적 자아를 제거하고,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존재의 도구가 됨으로써 확실성을 찾으려 한다. 루터에게 이 힘은 신이었고, 그는 절대적인 복종으로 확실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칼뱅은 루터의 신학에서 더 급진적으로 나아갔다. 칼뱅은 예정설을 절대화함으로써 예정설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그에게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구원받을 인간이고, 또 하나는 영원히 저주받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구원이나 저주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하는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신이 미리 결정해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비하와 인간적 자존심의 파괴가 그의 사상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 "왜냐하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비참함을 의식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불안만큼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2] 또한 칼뱅주의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교리는 인간의 구원과 관련해서 인간의 노력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괴로운 무력감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에서 필사적으로 도피하기 위한 열광적인 활동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2.4.2. 근대 사회

이렇듯 루터와 칼뱅의 교리는 특정한 유형의 성격을 형성시켰다. 도시 중산층의 열광적인 활동, ㅡ즉 일하려는 충동, 절약하려는 열정, 가외의 개인적인 힘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도구로 삼으려는 태도, 금욕주의, 강박적 의무감ㅡ은 자본주의를 가속화시켰고, 근대의 경제ㆍ사회 발전을 이끌어냈다. 인간은 자연의 속박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졌고, 과거에는 들어본 적도 없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정도로 자연력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간은 평등해졌다. 계급과 종교의 차이가 사라졌으며, 정치적 자유도 증대되었다. 개인은 더 이상 고정된 사회 체제에 묶여 있지 않았다. 전통에 근거를 둔 고정된 사회 체제에서는 개인이 전통적 한계선을 넘어 발전할 여지가 비교적 적었다. 이제 개인은 자신의 근면과 지성과 용기와 절약과 행운이 이끌어주는 한, 개인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허용되었고, 당연히 거기에 성공할 것으로 여겨졌다. 성공할 기회도 그의 몫이었고, 실패할 위험도 그의 몫이었다. 각자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 맞서 싸우는 치열한 경제적 전투에서 죽거나 다칠 위험도 그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소관이라는 이 개인주의적 활동의 원칙은 개인 간의 모든 유대를 끊어버렸고, 그럼으로써 개인을 동료로부터 고립시키고 분리했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주관적으로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초개인적인 목적에 자신의 생활을 바친다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은 놀랄 만큼 강해졌지만, 사회는 자기가 창조한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만든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반대로 인간이 만든 세계가 그의 주인이 되었고, 그 주인 앞에 인간은 고개를 숙이고, 될 수 있는 한 아양을 떨며 속이려 애쓴다. 그는 자기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든 구체적 능력을 가진 그의 전체적인 자아는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 체제의 발전에 기여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된다.

모든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는 규칙은 시장의 법칙이다. 개인과 개인의 구체적인 관계는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성격을 잃고, 속임수와 수단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경쟁자들 사이의 관계가 상대에 대한 인간적 무관심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경제적 과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서로 싸워야 하고, 필요하다면 상대를 경제적 파멸로 몰아넣는 일도 불사하게 될 테니까. 경제적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적 관계도 사물 사이의 관계와 같은 성격을 띤다. 사람은 상품을 팔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팔고, 자신이 상품이라고 느낀다. 남들이 그를 원하면 그는 쓸모 있는 인간이고, 인기가 없으면 쓸모 없는 인간이다. 자기 평가가 이처럼 '인격'의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야말로 인기가 근대인에게 그토록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 이유다.

개인은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고, 자기 외부에 있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에 조종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는 '개인'이 되었지만,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개인이었다. 이 근본적인 불안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 있었다. 우선 재산의 소유가 그의 자아를 뒤에서 받쳐주었다. 재산은 그의 자아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또 다른 요소는 명성과 권력이었다. 남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면, 그것이 불안정한 개인의 자아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재산도 사회적 명성도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부장적 권위나 민족적 자부심이 자아를 뒷받침해준다. 개인적으로는 하찮은 인물이라 해도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에서 대우를 받거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자랑으로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뒷받침하는 요소들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불안을 잠시 은폐할 수 있었을 뿐, 그의 불안을 본질적으로 근절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독점 자본의 힘이 점점 증대됨에 따라, 개인이 경제적 성과를 이룰 가능성은 줄어들었다. 독점 자본이 승리를 거둔 부문에서는 많은 사람의 경제적 독립이 무너졌다. 사실상 우세한 자본의 압도적인 힘에 위협당하는 중소 상인들의 심리 상태는 무력감과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노동자들에게는 대기업의 고용주가 그런 역할을 했다. 노동자는 고용주를 보는 것도 힘들다. '경영'은 그가 간접적으로밖에 상대할 수 없는 익명의 힘이고, 거기에 대해서 그는 개인으로서 무의미한 존재다. 기업은 너무 거대해서, 그는 자신의 특정한 업무와 관련된 작은 부분만 볼 수 있을 뿐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백화점과 고객의 관계는 얼마나 다른가. 백화점에 간 고객은 건물의 거대함, 수많은 점원들, 진열된 상품의 풍성함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이 보든 것에 비해 자기는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백화점 입장에서 보면, 그는 한 개인으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하나의' 고객으로서만 중요할 뿐이다. 근대적 광고 역시 사람들을 굴복시키려고 애쓴다. 광고는 상품의 품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때가 많고, 아편이나 최면술처럼 고객의 비판 능력을 억누르고 마비시킨다. 정치적 선전도 동일하다.
[1] 표지 하단에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다. "A psychologist examines modern man's choice between flight to authoritarianism and achievement of democracy. (한 심리학자가 권위주의로의 도피와 민주주의의 성취 사이에서 현대인의 선택을 검토한다.)"[2]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 2020,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