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23:33:40

이첨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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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첨승 (李添勝; 광동어로는 Lei Tim Sing).[1]

홍콩의 유명 드라마 감독. 1948년 출생.

주로 TVB의 드라마를 많이 찍었고 그 중에서 김용원작의 드라마를 왕천림(王天林)[2] 감독, 소생(蕭笙) 감독[3], 장위건(莊偉建)감독[4] 등등과 맞먹을 정도로 많이 찍었다.

영화에서도 몇몇 작품에 나왔지만 조연이라 비중이 거의 없고, 노래도 불렀지만 대부분이 합창이라 파트가 별로 없다. 천성이 드라마에 빅히트칠 분이라서

감독 데뷔작은 1978년 제작한 85부작 드라마《분투(奮鬥)》[5]. 하지만 이보다 국내에서 유명한 건 유덕화, 양조위가 나온, 지금도 이첨승 감독 作 김용 작품 중 최고 클래스로 손꼽히는 1984년 판《녹정기》. 이후 1998년에도 하나 더 찍었지만 앞에 것보다는 좀...

그 외에도 1987년에 제작한 《서검은구록[6], 1994년에 제작한 《사조영웅전[7], 1995년에 제작한 《신조협려[8], 1996년에 제작한 《소오강호[9], 1997년에 제작한 《천룡팔부[10], 1998년에 녹정기[11]를 하나 더 찍었다. 이때까지는 거의 다 명작이었다.

하지만 1999년에 《설산비호[12]를 대차게 말아먹고 2000년에 《벽혈검[13]마저도 말아먹어서 이 후 김용 소설 관련 드라마에서는 이미 손을 뗐다.[14] 최근에도 고전 드라마는 계속 만드는 중. 그래서 흥행한 작품도 몇몇 있다. 《건괵효웅(巾幗梟雄)》[15]과, 《의해호정(義海豪情)》[16] 《초한교웅(楚漢驕雄)》[17]이 대표작.

현존하는 홍콩 TVB 소속 감독 중 가장 연륜이 굵고 명작도 많이 찍고 유명 배우도 많이 배출한 만큼 현재 TVB에서의 대우도 높다. 그래서 2009년 TVB가 주최하는 시상식인 萬千光輝演藝大獎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aTV의 감독 용소기(龍紹基)가 aTV판 이첨승이라는 병맛나는 평을 듣고는 있지만 연륜 등 여러 방면을 볼 때 한참 멀었다. 견자단 영화 정무문의 감독을 맡았다...[18]


[1] 표준 중국어로는 리톈성(Li Tiansheng)[2] 유명 감독 왕정의 아버지. 1983년 사조영웅전과 1985년 설산비호, 1986년 의천도룡기를 찍었다. 2010년 11월 16일 83세의 나이로 사망.[3] CTV 시절에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를 찍었고 폐국된 이후 TVB로 건너가서는 1982년에 천룡팔부와 1983년에 신조협려를 찍었다. 2004년 11월 27일 77세의 나이로 별세.[4] 1994년에 사조영웅전 부록 남제북개를 찍었으나 2000년도에 제작한 의천도룡기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5] 주윤발조아지 주연[6] 원전에 상당히 충실했다. 중국에서는 황해빙판과 함께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다.[7] 국내에서는 대사조영웅문으로 출시되었다. 물론, 주인(朱茵)의 황용 연기도 레전드급이지만 방영 당시 현지에서는 1983년 버전에서 황용역을 맡은 옹미령의 임팩트가 매우 강해서 황용을 연기한 주인이 "전작보다 못하다"라고 욕을 먹었다는 후문이 있다. 그러나 옹미령은 2년 후 탕진업(湯鎮業)과의 스캔들로 인해 자결하였다.[8] 고천락과 이약동이 양과와 소용녀를 맡은 버전이다. 국내에서도 VHS로 출시되었고, 지금도 신조협려 팬들에게 인지도가 많다.[9] 이것도 원전에 충실해 호평을 많이 얻었다. 다만 임영영 역이 조금...[10] 다른 천룡팔부 드라마와는 달리 단예중심으로 흘러간다. 신조협려, 소오강호와는 달리 각색이 심했지만 역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82년판에 허죽역으로 출연했던 중년배우(!!) 황일화가 소봉역을 맡았다.[11] 84년판의 포스에 밀려서 국내에는 많이 안 알려진 면이 있지만 이것도 인기가 나름 높았었다.[12] 사실 설산비호의 드라마판은 1985년도에 제작한 버전이 레전드였다고 한다. 물론 이 버전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지만 1999년판은 완전 막장. 각색이 심했고 연기력도 발연기 수준.[13] 이것도 원작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물론 폭망까지는 아니지만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평은 많다.[14] 그것보다는 김용의 중국의 장기중(張紀中)감독에게는 김용 판권료를 단 돈 1원에 넘기는데 비해 TVB에게는 거액의 판권료를 요구하고 있어서 TVB와 김용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는데, 사실 TVB는 김용 소설 뿐만 아니라 TVB 자체에서 무협 드라마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무협 드라마가 과거처럼 시청률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본토에서 본격적으로 무협 드라마 제작에 뛰어 들면서 CG 라던가 기타 비용이나 스케일이 커지는 바람에 제작비가 늘어난 것도 있다.[15] 국내에서는 위대한 상속이란 어처구니 없는 제목을 붙여 방송.[16] 국내에선 격동 1930 광저우라는 어이없는 제목을 붙여 방송했다.[17] 초한지를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다.[18] 1969년에 데뷔했고 용소기는 1970년 중후반에 데뷔했다. 게다가 용소기는 대작이 별로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