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이진한은 1989년에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2년에 사법연수원을 21기로 수료한 뒤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에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4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6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서 1999년에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2002년에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가 되었으며 2003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영전했다. 그러다가 2006년에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장이 되면서 부장검사로 승진했고 2007년에는 인천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가 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 대검찰청 공안2과장으로 영전했고 이 당시에 화물파업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2009년 인사에서는 대검찰청 공안1과장으로 옮겼다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장으로 영전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으로 있을 때 전교조 사건, 진보정당 불법후원금 사건,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기밀누설 의혹 사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이적표현물 소지 사건,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 함바비리 사건,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무상급식 반대광고물 사건, 황장엽 살인미수 사건, 군사기밀 유출 사건, 흑금성 사건, 서울시교육감 불법선거 운동 의혹, 서울 중구청장 금품수수 사건, 참여연대 천안함 서한 사건 등 대표적인 공안사건들을 수사했고 그 뿐 아니라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을 기소했으며 6.2지방선거의 선거사범들을 수사하는 데도 앞장서면서 이진한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불렸다.
이후 2011년에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이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했는데 이후에도 곽노현 교육감 금품수수 사건, 왕재산 사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등 대표적인 공안사건의 수사를 지휘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인사에서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로 영전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시절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환수를 지휘했으며 연이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의 수사도 지휘하게 되었으나 이 사건의 수사팀장이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과 충돌했다.
그러다가 회식 중에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검사장 승진에 실패한 채 2014년에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 2015년에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난 뒤 무혐의 처분을 받고 사의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