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이금상 李錦裳 | |
출생 | 1868년 |
청나라 광동성 향산현 남수 | |
사망 | 1922년 (향년 54세) |
포르투갈령 마카오 | |
국적 | [[중화민국 북양정부|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기업인 |
자녀 | 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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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중화민국 시기의 기업인. 굴소스를 만들었고 굴소스를 주력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이금기의 창립자이다.2. 생애
중국 남부 광동성의 해안도시 향산현 남수마을에서[1] 태어났다. 남수는 굴이 무척 잘 자랐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지역에선 굴을 이용한 요리를 내놓는 식당이 많았다. 한집 건너 한집 꼴로 굴요리 식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금상도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굴요리도 함께 내놓았다.그러던 어느 날, 웍에 굴을 넣고 불을 켰고 그날따라 너무 바빠서 이 사실을 깜빡했다. 잠시 후 부엌에서 강렬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불을 켜둔 것이 생각났던 이금상은 서둘러 뛰어가 불을 껐다. 요리는 실패작이 되었다. 그런데 웍 안의 굴 위로 짙은 갈색의 액체들이 쌓여 있었다. 처음 본 색깔에다 끈적한 질감에 호기심이 생겨 손가락을 찍어 맛봤다. 달고 짠데 감칠맛까지 느껴져 이것을 판매할 생각을 했다. 이에 굴소스 전문회사 이금기를 1888년에 설립했다.
장사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으나 1902년 굴소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공장이 사실상 전부 소실되었다. 공장을 다시 지어야 할 상황에 놓인 이금상은 고심끝에 본사를 마카오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마카오는 홍콩의 부상으로 인해 해가 저물어가는 도시였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굴소스 소비는 홍콩보다 마카오에서 훨씬 많았기 때문에 마카오를 선택했다. 난수이보다 훨씬 큰 마카오 시장으로 진출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1902년 이금기는 마카오로 본사를 옮겨 이금기유한공사로 재탄생했다.
마카오로 옮기고 나서 난수이에 있던 시절보다 장사가 잘됐으며 경쟁 기업들과 공생하며 이금기는 마카오의 4대 굴소스 회사이자 원조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1922년 아들 이시우난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