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6:47:31

의사폭동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colcolor=#fff> 의사 폭동[1]
Doctors' riot
파일:An_Interrupted_Dissection.jpg
<colbgcolor=#bc002d> 발생일 1788년 4월
발생 위치

[[미국|]][[틀:국기|]][[틀:국기|]]
유형 폭동
원인 의사들의 시체 도굴 및 영향력에 대한 반발
인명피해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6 ~ 20명
1. 개요2. 전개3. 배경4. 과정5. 결과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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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88년 뉴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의사들의 무분별한 시체 도굴질 및 과하다 싶을 정도의 영향력[2]에 분노를 쌓아가던 민중이 폭발했던 사건.

2. 전개

한 의사의 집앞에 아이들이 놀고 있자, 그 의사는 아이들을 내쫓기 위해 시체의 팔을 그들에게 흔들며 "이건 너네 어머니의 팔이다! 이렇게 되기싫으면 썩 꺼져!"라며 아이들을 내쫓았고 아이중한명은 울며 아버지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고 분노한 아버지가 묘지에 가 무덤을 파보자 진짜로 시체가 사라져 있었다.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의사 폭동이 시작되었다.

3. 배경

해부연구용 시체, 그러니까 카데바가 공식적으로 공급되기 전까지는 의사들, 특히 한의학에 비해 외과적이나 직접적인 조치를 취해야 했던 의사들은 해부학용 시체가 필요했고 시체 도둑질을 했었다.역사도 기원전부터 시작해 수천년이 되었고 생물학에 연관이 있던 우리가 알만한 과학자들도 상당수가 시체를 훔쳤었다.[3] 해부 자체가 망자의 육체를 훼손하므로 동서고금 막론한 망자를 모욕하는 행위였고 서양권에서도 공식적인 해부는 대역죄인들에게만 행해졌을 정도였다. 그럼 왜 19세기가 다 되서야 이 사건이 터졌냐 하면 그전까지는 의사들의 도굴 대상은 유색인종,하층민, 외부인등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사회에서도 알사람들은 아는 암묵적인 병폐였다.하지만 의사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못했고 결국 일반시민들의 묘까지 건드는 지경에 이르렀던것.

이당시 의사들은 의학과 전혀 관련없는 부분에도 의사들이 간섭하고 자문,감독을 맡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당시 의술과 의사들의 기준은 형편 없어서 공식적인 자격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도제식[4]과 2년제 대학에서 졸업하는것만으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의사가 되는등 의사집단들에 대한 병폐가 끝을 달리고 있었다.

4. 과정

아이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뭉쳐서 그 의사포함 뉴욕의 의료시설들을 습격한다. 하지만 이미 높으신 분들및 의사들은 진작에 다 도망가고 수습인원들만이 연구자료를 지키고 있었고 갈곳을 잃은 분노는 폭동으로 번졌고 감옥을 점거해 죄수들을 풀어주었고 정부에 숨겨놓은 의사들을 내놓으라 하고 있었다.상황이 걷잡을수 없이 커지자 군대가 투입되었고 시민들은 설마 시민들에게 총을 쏘겠냐며 대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기를 주저했던 경찰들과는 달리 군대는 주저 없이 시민들에게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결국 그들은 진압당했고 그후에도 사람들은 모였지만 더이상 이만큼 대규모로 뭉칠수가 없게 되었다.

5. 결과

이 사건은 의학 연구와 교육의 발전을 위한 시체 확보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오늘날에도 의학 연구를 위한 시체 확보는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으며, 이를 위한 윤리적 기준과 법적 규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후에 시민들의 묘를 도굴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전부터 끊임없이 시체도굴을 당하던 흑인들과 하층민들도 이 폭동에 참여했음에도 그들의 시선 밖어었다. 그들은 여전히 의사들의 도굴 먹이감이었고 교대로 무덤을 경비서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몇백년간 이들은끊임없이 의사들에게 통수를 맞는다.

6. 기타

의외로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책으로 한두권이 전부이며 인터넷상에서도 거의 없다시피 한다.

참고로 해부학을 위해서는 죽은지 얼마 안된 신선한 시체가 베스트이다. 그리고 당시 사회 기술력상 완벽한 사망진단이 힘들어 묘지에 묻힌 사람들중 일부는 아직 살아있었기 때문에 '의사들중 일부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생채실험을 했을수도 있다.'라는 무서운 상상도 가능하다.


[1] 후술된 대로, 의사들이 폭동의 원인이 되었기에 의사 폭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의사가 폭동을 일으킨 주체가 아니다.[2] 근세부터 근대까지 의사들은 유대인의 랍비 그이상의 권리를 행사했다.의학과 전혀 관련없는 부분에도 의사들이 간섭하고 자문,감독을 맡았다고 한다.[3] 대표적인 예가 뉴턴.[4] 현재 대학원생들이 박사가 되는걸 생각하면 된다. 물론 더 형편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