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1 00:22:21

유경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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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2년 1월 15일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성내리
사망 몰년 미상
학력 주오대학 (졸업 여부 불명)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2021년 추서)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 독립유공자.

2. 생애

1892년 1월 15일 경상남도(慶尙南道)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성내리(城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東京) 주오대학(中央大學) 재학 중에 2.8독립선언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4월 일본에서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서 4월 25일 남형우(南亨祐)·이춘숙(李春塾)·서병호(徐丙浩)·홍도(洪濤)·이광의(李光儀)와 함께 임시의정원법 심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4월 29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김창숙(金昌淑)·김정묵(金正黙)·백남규(白南奎)·김동형(金東瀅)·김갑(金甲) 등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경상도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여운형(呂運亨)을 단장으로 하는 대한민국 청년단의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5월 13일 제4회 임시의정원에 출석하였으며, 7월 8일 재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9월 10일 조완구(趙琬九)·김병조(金秉祚)·장붕(張鵬)·고일청(高一淸) 등과 함께 국제연맹에 제출할 청원안의 수정위원으로 선정되었다. 9월 11일 임시의정원 당시 법제심사위원 이규홍(李奎弘)·김갑(金甲) 두 의원이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에, 유경환·나용균(羅容均)이 보결로 선출되었다.

1920년 2월 26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헌법상 규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임시의정원의 의원증(議員證)을 만든 이유를 질문하였다. 이어서 법제 제정을 위해 유경환·이춘숙·나용균·고일청·홍도가 상임위원회 제1과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20년 3월 18일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고, 진주형무소에 수감 중 1922년 10월 30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3. 대중매체

4.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