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18:58:12

원서 영역

1. 의미2. 현상의 유래3. 단어의 발상지4. 원서 영역의 실황5. 과도한 눈치싸움의 문제점6. 냉전의 해결책

1. 의미

수시정시 등 어떤 형태의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 일종의 눈치싸움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지원자 모두가 자신의 성적대에 맞는 학교만을 지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2. 현상의 유래




이러한 현상은 수능의 전신인 대학입학 학력고사 때부터 이미 작용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학입학 학력고사 때부터 본격화 되었다.

제5공화국이 시작되면서 전두환의 사회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실시된 과외 금지 조치와 맞물려, 당시 망국병이라고 일컬어지던 고액 그룹과외의 이유였던 본고사를 1981학년도 대학입시부터 금지하고 대학입학 예비고사[1] 성적만을 반영하는 이른바 7.30조치를 1980년 7월 30일에 발표했다.

따라서 이때까지 자신의 소신껏 대학 지원해 본고사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시험을 치르고 이미 결정된 점수를 갖고 대학에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지원 상황을 철저히 살펴야 했다.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서 합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임을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인지하고 있었다.[2] 따라서 이 세대의 수험생들은, 학력고사를 잘 봤다고 해서 마냥 넋 놓고 놀지많은 않았다. 성적표가 나온 이후부터 눈치싸움을 하기 위한 중무장을 했던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고로 1980년대 이후 한국 대학입시의 키워드인 눈치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3. 단어의 발상지

수만휘, 오르비 등의 회원수가 100만에 육박하는 거대 입시 포털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의 오르비는 성적표 인증을 통해 우수한 인재만이 회원가입을 할 수 있던 곳이었는데, 이곳에 모인 일명 공부괴물(괴수, goat)들은 사실 자신의 성적에 대한 고민보다는 원서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더 컸다.

점수 0.x점 차이로 희비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희(喜)를 얻으려면 다른 학생 앞의 열 수를 미리 내다 보아야 했다. 당연히 전공적성 따윈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학원 입시처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입시 포털에서 서로 점수 공개를 해 가며 눈치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상황이 마치 수능의 한 과목을 보는 것 같다 하여 원서 영역이라고 불리우게 됐다.

또한 2005학년도 이후[3]수능은 1교시 언어 영역(현 국어 영역), 2교시 수리 영역(현 수학 영역), 3교시 외국어 (영어) 영역(현 영어 영역), 4교시 탐구 영역, 5교시 제2외국어/한문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눈치싸움이 마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 과목을 보는 것 같다 하여 6교시 원서 영역이라고 불리우게 됐다.

다시 말해 원서 영역 현상은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원서 영역 용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초인 것이다.

4. 원서 영역의 실황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선택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원점수만으로는 진정한 실력자를 우열하기 어려워 표준점수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 표준점수만으로는 동점자가 많이 발생된다는 문제가 있어 대학별 변환표준점수 제도를 시행했다. 그렇게 0.001점 혹은 이 이하의 단위까지 써 가면서 학생들을 변별하고자 하는 대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수가 완벽하게 똑같은 경우도 발생했다. 물론 변환표준점수 상의 동점자 처리기준은 대학들이 제시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으며, 대부분 동점자 변별 과정은 내신 성적이고 아닌 경우는 특정 과목의 점수이다. 하지만 동점자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은 표준점수를 그 학교 특유의 변환점수로 환산한다. 학교마다 영역 별 점수 반영 비율도 다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동점자도 많은 편이고,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계산 상으로는 한 문제도 차이나지 않는 점수로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불합격한다. 이렇게 학원이나 입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기준 배치점수에 걸맞는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본인은 불합격했지만 합격한 사람이 나보다 수능을 압도적으로 잘 봤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능을 잘 봐 놓고도 불안에 떨게 되는 것이 현재 수험생들의 모습이다.

5. 과도한 눈치싸움의 문제점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류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고도 못 가거나 일류대는 꿈도 못 꿀 성적을 받고도 가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쉽게 말해 극도의 하향지원으로 인해 본인의 위치에 맞는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하향지원을 하면 그에 대한 연쇄적인 부정적 영향은 그 밑의 학생들에게도 전이되어 덩달아 하향지원을 하게 되고, 그 밑의 밑의 학생도 하향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위권 학과가 미달이 나서 하위권들이 이른바 '배짱지원'을 하여 상위권 학과에 합격을 하는, 통칭 '역전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수능은 아니지만 학력고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직전인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4]에 300점 이상을 획득한 많은 학생들이 겁을 내어 지원하지 않은 덕에 학과가 미달이 나서 이른바 '배짱지원'을 한 학력고사 200점 이하인 학생 5명이 서울대학교 법대에 합격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들은 '관악산에 노루가 뛰논다' '법대 교수' '너는 참아다오'를 영어로 말하라는 면접에서 '관악마운틴 노루점핑' '티쳐오브법대' '유 니드 노 에너지' 라는 전설의 대답을 말했다고(...).

게다가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 서울대 상당수 학과에서 미달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듬해부터의 서울대 입시 요강에는 '본교 수학이 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합격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원서 영역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당시 기사

최근에도 이러한 현상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2016학년도 연세대학교 정시 모집의 입시 결과는 말 그대로 뒤집혔는데, 바로 평상시에 하위권과였던 곳이 상위권과를 앞지르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과도한 눈치싸움이 결국은 수험생들로 하여금 하향지원이라는 카드를 뽑게 만들고, 이에 자신이 만족하지 못할 대학이나 과에 진학하게 되어 어떻게 보면 반수생[5]을 양성하게 된다.

일종의 냉전과도 같은 치열한 싸움을 하며 대학에 들어가지만, 과도하게 이런 눈치싸움을 하다 보면 막상 자기가 원한 곳이 아닐 확률이 높다.

6. 냉전의 해결책

사실 교육계는 지난 1981년부터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방지하기 위한 해결책을 만들 만큼 만들었다.

애당초 학력고사 때의 '선지원 후시험' 정책도 본래는 이러한 눈치작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육부에서 나와 '수험생 여러분, 자신감을 갖고 자기 점수에 맞는 대학을 쓰십시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단지 수험생 본인들이 원서를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이 비롯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 원서 영역에 대한 문제는 거의 수험생들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해결책을 찾자면 말그대로 욕심 내지 말고 안정권이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학교, 학과에 원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사실 그게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에, 교육계에서도 학생들을 나름 계몽해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1] 1982학년도부터 대학입학 학력고사로 명칭 변경.[2] 물론 시험을 잘 보는 것과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완전한 독립변수는 아니긴 하다.[3] 정확히는 2001학년도부터다. 다만 2001학년도부터 2004학년도까지는 3교시와 4교시의 과목이 서로 달랐다.[4] 당시 문과(인문)계열 최상위 학과.[5] 재수생, 삼수생과 같이 N수생의 신분인데, 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