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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운캄(Oun Kham)은 루앙프라방 말기의 국왕이다. 프랑스의 오귀스트 파비와 보호 조약을 맺은 것으로 기억된다.2. 생애
당시 루앙프라방 왕국은 시암의 속국으로 강한 간섭을 받아야 했다.1860년대부터 청나라 남부 태평천국 잔당 출신 비적인 호(Haw) 세력이 라오스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캄의 군대는 이들을 막아내기 역부족이었다. 이에 1887년 7월 호 비적의 한 분파인 흑기군이 루앙프라방을 약탈하고 운캄을 위협했다. 이때 프랑스 부영사 오귀스트 파비(Auguste Pavie)가 운캄을 구출했고, 운캄은 더 이상 독립의 방도가 없다는 좌절감에 프랑스의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1893년 7월, 프랑스는 시암과 충돌했다. 차오프라야 강을 거슬러 방콕을 위협하는 팍남(Pak Nam) 사건이 발발한 것이다. 이때 시암은 1867년 캄보디아로부터 받았던 시엠립, 바탐방, 시소폰을 반환하고, 루앙프라방을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인정한다.
운캄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9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