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오성운(吳聖云) |
이명 | 오성삼(吳成三) |
생몰 | 1859년 ~ ? |
출생지 |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 덕치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오성운은 1859년생이며 전라남도 장성군 북상면 덕치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 6월 박용식(朴鏞植) 의병장이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킬 목적으로 작성한 격문과 통문을 배포하는 데 참여했다. 그는 목판 조각을 담당한 김봉의(金鳳儀), 그 인쇄판을 소지한 김봉선(金鳳善)과 함께 인쇄물을 작성하여 각처에 발송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탐지한 광주경찰서에 체포되어 인쇄된 격문과 통문 200여 매를 비롯하여 인쇄판 40매 및 목재 활자 수천 개를 압수당했다.이후 1909년 7월 12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내란 혐의로 유배형 2년을 선고받았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오성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