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01:23:16

예핌 포민

<colbgcolor=#CC0000><colcolor=gold> 예핌 모이세예비치 포민
Ефим Моисеевич Фомин
파일:1000123725.jpg
출생 1909년 1월 15일
러시아 제국 비텝스크현 콜리시키
(現 벨라루스 비텝스크주 료즈나군 칼리시키)
사망 1941년 6월 26일 (향년 32세)
소련 벨로루시 SSR 브레스트주 브레스트 요새
(現 벨라루스 브레스트주 브레스트)
직업 군인
최종 계급 하급 정치지도원[1]
참전 독소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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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정치장교.

2. 생애

1909년 1월 15일, 콜리시키에서 태어났고, 어린시절 부모를 잃어 고아원에서 성장했다. 1924년 전연방 레닌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에 가입했다. 15세부터 신발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프스코프로 이주해 공산당 학교에서 최우수 당 노동자로 선정되어 공산당에 입당했다. 이후 선전 담당원으로 근무했다.

1932년 노농적군정치장교로 들어와 프스코프, 크림 반도, 하리코프, 라트비아에서 복무했으며 1938년부터 사단 정치장교로 임명되었다. 1941년 제6소총사단 제84연대가 있는 국경지대 브레스트 요새의 정치장교가 되었다.

6월 20일 가족들과 함께 라트비아 다우가프필스에 여행을 갔지만 열차역에서 가족들은 열차에 탑승했으나 본인은 인파로 인해 탑승하지 못했다. 다음날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국경지대인 브레스트 요새에서 첫 전투가 펼쳐졌고 독일군의 공격준비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반 주바초프 대위와 함께 부대를 지휘해 독일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쳐 여러 공세를 격퇴했다. 하지만 독일군은 로켓포, 항공지원을 통해 요새를 밀어붙였고 결국 5일만에 요새는 함락되었다. 포민의 요새의 북쪽에서 저항을 계속했으나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의 정치장교 색출에 의해 총살된다. 영화 '브레스트 요새' 에서 이 장면이 등장하는데, 전투 종료 후 독일군 소령이 소련군 포로 중 정치장교나 공산주의자, 유대인을 따로 분류하자, 포민이 직접 '내가 바로 정치장교요. 공산주의자에다 유대인이지'라고 하며 자진 총살당한다.

사후 레닌 훈장이 수여되었다.


[1] 중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