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여채룡(呂彩龍) |
호 | 이은(二隱) |
본관 | 성주 여씨 |
생몰 | 1866년 12월 16일 ~ 1936년 5월 21일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1] |
사망지 | 경상북도 금릉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여채룡은 1866년 12월 16일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구성, 희곡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섰으나 끝내 패했다. 이후 망국의 한을 깊이 간직하던 그는 1921년 12월 조선총독에게 애국가(哀國歌) 및 포고문(布告文) 그리고 일왕 10죄론(日王十罪論) 등 설유문서(說諭文書)를 발송하였다. 한편 동지를 규합하여 국권회복을 도모하고자 애국가(哀國歌)·창의 통고문(倡義通告文) 등을 작성하여 평양 등 12개소의 향교에 발송하였다.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4년 2월 25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금릉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6년 5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여채룡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2019년 8월 14일 여채룡의 동생 여우룡(呂祐龍)이 10개월간 형의 옥바라지를 하며 느낀 소회를 담은 '소은일기'가 김천향토사연구회에 의해 번역되어 대중에 공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