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03 17:19:24

앙리 나바르


1. 개요

앙리 나바르는 1898년에 태어나 1983년에 사망한 프랑스 군인이다. 1차 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극동프랑스원정군의 사령관을 맡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916년에 생시르 사관학교를 나와서 1917년 제1차 세계 대전에 투입되었다. 이후 시리아와 독일에서 근무하다가 2차세계대전 초반에 대독일 첩보를 맡았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레지스탕스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1952년 10월에 나바르는 주앵 장군에 의해 나토 중유럽 지부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한편, 인도차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국무회의 의장 르네 마이에는 프랑스 총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살랑 장군을 해임하고자 한다. 인도차이나에 대해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었던 살랑에 비해, 나바르는 인도차이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르네 마이에는 나바르에게 "명예로운 종전"을 찾을 것을 요청한다. 1953년 5월 19일에 사이공에 도착한 나바르는 리나레스와 살랑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지형을 검토한 뒤 7월 2일에 프랑스로 돌아가 "나바르 플랜"을 공개한다. 1953년 10월에 비엣민이 라오스의 라이쩌우성을 점령해서 남베트남으로의 통신을 제어하려고 하자, 나바르는 라오스를 방어할 작전을 세운다. 나바르 휘하 장군인 르네 코니 (René Cogny) 장군은 나산 기지를 철거하고 라오스로 가는 길목인 디엔비엔푸에 육/공군 기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한다. 디엔비엔푸는 산으로 둘러싸인 세로 17킬로미터, 가로 7킬로미터의 평지였다. 한편, 북베트남 육군 장군인 바스티아니는 기동성이 뛰어난 비엣민에게 길목을 막는 것은 의미가 없고, 차라리 당시 비엣민의 공세의 대상이었던 홍강 삼각주[1]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것이 낫다고 한다. 결국 나바르는 디엔비엔푸 밑자락에 군대를 주둔시켜 비엣민을 공성전으로 유도하려고 한다. 결국 1954년 3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비엣민 총사령관 보응우옌잡은 중국/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308사단, 312사단, 316사단과 304사단으로 프랑스군을 에워싸고 박격포로 폭격한다. 패배 이후 나바르는 6월 3일에 다시 살랑 장군으로 교체당한다.

은퇴한 나바르는 1956년 출판한 "인도차이나의 고통"이라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오판들을 반성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변호하려 한다.

3. 성격

2차세계대전과 인도차이나 전쟁 때 나바르 휘하에 있었던 장 푸제는 나바르가 냉철하고 정확했다고 주장한다.
[1] 하노이와 하이퐁 사이에 위치한 삼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