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14 21:41:48

알레한드로 기이에르




Alejandro René Eleodoro Guillier Álvarez, 1953.3.5 ~

칠레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으로, 2017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떨어졌다. 현재 소속 정당은 없으나, 중도좌파 정당연합인 신주류의 일원이다.

정치 활동을 보면 의외로 정동영과도 비슷한데, 공교롭게도 둘 다 1953년생으로 동갑이다. 어떻게는 이회창 같기도 하다.
1. 생애2. 정치 활동3. 2017년 대선4. 차기 대선 도전?5. 각주

1. 생애

코킴보 인근의 라 세레나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 안토파가스타에서 병역을 수행했다. 이곳에서 군복무 뿐 아니라 교육까지 마쳤는데 북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전형적인 사막인이다.

1971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수학 중이던 1973년 쿠데타가 터지면서 일시적인 휴교 상태에 들어가, 다소 늦은 1977년에야 졸업했다. 이후에는 언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3년을 더 수학했다가, 1980년 에콰도르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대학원 시절 마리아 크리스티나 파르가 에르난데스를 만났으며 이후 칠레로 귀국하여 결혼했다.

곧바로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TV, 신문, 라디오 등에 출연하여 존재감을 알렸다. 주로 정치 관련 부분을 담당했는데 이 때 명품 앵커로서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덕분에 2004년 상을 받았다. 참고로 이 시절 세바스티안 피녜라와 베아트리스 산체스를 만났는데, 당시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였고 특히 후자의 경우 방송 파트너였지만, 훗날 세 사람이 대선에서 서로 맞붙는 앙숙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 정치 활동

당초 각계에서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지만, 본인은 이를 고사하고 있다가, 2013년 방송계를 떠났고 곧바로 신주류 소속의 사회민주급진당에 입당했다. 곧바로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어 같은 연합의 미첼 바첼레트가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권력의 핵심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3. 2017년 대선

이후 범여권의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했고, 2017년 1월 7일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전후로 사회민주급진당을 탈당했으며, 경선에서 사회당의 리카르도 라고스(전 대통령)를 누르고 신주류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별다른 정치 경력이 없는 새로운 인물이 선출되면서 칠레에서는 그야말로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바첼레트 정권 2기 무렵의 각종 실책과 계파 갈등으로 민심은 흉흉했고, 안그래도 언론인 시절에 만난 피녜라와 산체스와 떡하니 맞붙게 되면서 첫판부터 곤란한 상황을 면하지 못했다. 당장 정치 경력이 부족한 기이에르가 무려 30년 경력의 기업인 출신인 피녜라를 이기는 것은 상당한 무리였으며, 무엇보다도 신주류의 일원이었던 기독교민주당이 연대를 탈퇴하고 독자주행을 감행하면서 분열이 더욱 더 심화되었다. 게다가 산체스가 광역전선이라는 대체좌파연합을 창당하면서 범여권은 그야말로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집안 싸움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게다가 기이에르가 후보가 된 것 또한 무소속에다가 비주류인 사회민주급진당 출신이라는 메리트 덕분이었는데, 당시 바첼레트가 소속되어 있던 사회당이 민심의 비토가 심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사회당은 안 된다는 정서가 팽팽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기이에르는 연합의 중립파로 분류되었던 셈.

결국 여권의 분열로 22.7%를 득표해, 36.6%를 득표한 피녜라에 밀려 2위를 기록했다. 다만 범여권 후보들을 다 합치면 과반에 달했으며, 결선이 다가오자 산체스 등을 비롯한 범여권 탈락자들이 집단으로 기이에르 지지를 선언하면서 막판 대결집 및 반전을 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본선 1위가 곧 결선 1위라는 징크스를 피하지는 못했는지, 결국 본선 때보다 투표율이 살짝 더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45.4%를 득표해, 54.6%를 득표한 피녜라에 밀려 떨어졌다. 원인은 범여권의 막판 대결집에도 불구하고 내부 갈등이 여전히 심각했으며, 단일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심지어 아예 연대를 탈퇴한 기민당의 카롤리나 고이치 마저 기이에르 지지를 선언했으나, 양측 간의 앙금을 감안하자면 고이치의 표가 피녜라에게 갔을 가능성이 높다.

4. 차기 대선 도전?

비록 첫 번째 도전은 이렇게 패배로 끝났지만, 앞으로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일단 피녜라 또한 1기 때 실책을 저지른 것이 그만큼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주었으며, 결국 2013년 대선 당시 범우파계 후보로 나간 에벨린 마테이가 바첼레트에 밀려 떨어졌다. 대체적으로 1기보다 2기를 잘 못 하는 점은 역대 대통령들이 겪는 대표적인 징크스의 하나이며, 현재로서도 곧바로 대통령에 복귀하는 피녜라 또한 이 징크스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반등을 얻는다면 2021년 대선은 신주류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이에르가 후보가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사회당 심판론 때문이었는데, 당장 사회당의 실정이 원인이 되었으니 차기 범여권 후보는 사회당은 안 된다는 것이 원인이었다. 허나 피녜라 2기를 거치면서 사회당이 혁신을 거친다면, 2021년에는 사회당이 되레 반등을 얻어 신주류 후보 선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된다면 비교적 중립파인 기이에르는 밀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한국처럼 주요 후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꾸준히 도전하는 칠레가 아니라서, 다음 대선 때는 역으로 영영 파묻힐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68세로 이것이 나중에는 그만큼 악조건이 될 수도 있다. 혹시나 젊은 후보를 찾는다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