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2:38:20

알 하지브 알 만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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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압둘라 알 만수르.jpg

أبو عامر محمد بن عبد الله بن أبي عامر الحاجب المنصور
아부 아미르 무함마드 빈 압둘라 이븐 아비 아미르 알 하지브 알 만수르[1]
Almonzar (알몬자르)

생몰 938 ~ 1002년 8월 8일
집권 978 ~ 1002년

1. 개요2. 그리스도교 국가와의 전쟁3. 사후 혼란

1. 개요

알 만수르는 10세기 말엽 후우마이야 왕조실권자로서 무려 24년간 실권을 휘둘렀으며 (978 ~ 1002년) 공포 정치를 하였다. 그는 전쟁 사령관으로도 활약하며 기독교 왕국들을 자주 침략하여 멸망 직전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만수르 사후 후우마이야 왕조는 쇠퇴하였고 결국 타이파 (분열) 시대를 맞게 되었다. 고향인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바로 옆이다)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2. 그리스도교 국가와의 전쟁

알 만수르는 북아프리카 일대의 이드리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후방을 안전하게 다진 후에, 군 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거 증강시킨 병력을 바탕으로 후우마이야 왕조 북방의 기독교 세력들을 공격하여 거듭 승리를 거두었다. 알 만수르 이전 후우마이야 왕조의 군사력은 정통 칼리파 시대우마이야 왕조 시절과 마찬가지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부족 병력들에 기반하였다면, 알 만수르의 군제 개혁 이후 후우마이야 왕조의 군사력의 주력은 이른바 사깔리바(صقالبة)라 불리던 슬라브인 노예[2]로 이루어진 상비군이 중심이 되었다.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부족 군대는 정복 전쟁 과정에서는 새로 이슬람의 영토를 확장한다는 지하드 이데올로기나 전리품 등등을 목표로 하여 열심히 싸웠지만, 방어를 목적으로 한 전쟁에서는 영 시원찮았다. 아브드 알 라흐만 시절 이래 점점 확장되던 사깔리바 군대는 알 만수르 시대에 들어서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의 사실상 주력이 되었다. 또한 알 만수르는 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지하드를 벌이는 와중에 상당수의 기독교도 용병들을 고용하였는데, 아랍인들이나 베르베르인들이 왕조보다는 자신의 부족에 충성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독교도 출신 용병들은 돈을 제대로 준다는 전제 하에서 고용주에게 흔들림 없이 충성하였기 때문이다.

977년에 기독교도들에게 재정복당했던 살라망카를 회복하였으며 여세를 몰아 쿠에야르를 공격하였고 이듬해에 팜플로나를 습격하였다. 979년에는 세고비아를 수복하고 자모라를 습격하였다. 981년에 아스트로가를 습격하며 레온 왕국에 충격을 준 그는 982년에 기어코 그 수도레온에 입성, 도시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984년, 아스타로가를 재차 공격한 만수르는 그 해 말에 바르셀로나를 공격하여 이듬해 여름까지 그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톨레도로 돌아갔다. 986년에 아스트로가는 3번째로 함락되었다. 987년에는 878년에 레온 왕국이 점령했던 코임브라를 수복하였다. 그리스도교도들은 그의 거침없는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988년에 레온이 재차 함락되었다.

이후 5년간 군세를 정비한 만수르는 993년부터 재차 레온 왕국의 동부를 공격하였고 995년에 살란다를 습격하였다. 이에 레온 왕국이 동쪽에 군대를 모아두자 만수르는 돌연 서쪽에 출몰, 997년에 스페인 그리스도교의 최대 성지이자 레콘키스타의 정신적 지주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습격하였다. 도시와 성당은 파괴되었고 성당 대문은 코르도바 모스크에 걸리게 되었다. 기독교 세력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것이다. 3년 뒤인 서기 1000년, 레온 왕국의 제2의 도시부르고스가 함락되었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만수르는 자신의 마지막 원정이 된 1002년의 공격에서 도우로 강 상류의 칼라타냐조르를 공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망하였다.

3. 사후 혼란

알 만수르 시대 전성기를 맞던 후우마이야 왕조는 그의 사후 29년만에 여러 타이파 국가들로 분열되어 멸망하였다.

후우마이야조 말기의 번영과 군사적 성공은 사실상 알 만수르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지탱되던 바, 알 만수르가 사망하자마자 후우마이야 왕조는 겉잡을 수 없는 속도로 붕괴되지 시작했다. 알 만수르는 일개 법조인 출신으로 조폐국 국장, 근위대장의 사돈, 칼리파 어머니의 말동무 등으로 승승장구한 비범한 인물로, 비리혐의로 조폐국 국장에서 해임된 이후로는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주변국들과 전쟁을 벌이고 여기서 거듭 승리를 거두며 절대권력을 확립한 인물로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문제는 알 만수르가 계승권을 안정적으로 다질 수 있는 칼리프가 아니라 일개 재상에 불과하였고, 권력 계승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었다(즉 그가 사망하면서 만든 빈 자리를 수습할 수 없었다)는데 있었다. 특히 알 만수르 시절 대대적으로 진행된 군사개혁은 그의 사후 제국이 붕괴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의 사후 슬라브인 노예 병사들은 지방에서 군벌 정권을 세우며 후우마이야 왕조의 권위를 무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들을 견제할 수 있었던 아랍인들은 군대 내에서 발언권이 약화된 상황이었다.

그의 후계자가 1006년피레네 산맥의 아인사 등을 공격하기도 했으나 1008년에 칼리파 히샴 2세마저 조카(무함마드 2세)에게 투옥당하자(히샴 2세는 후에 또 다른 조카[3]를 몰아내고 복위하나 그 조카가 복위하며 사망)후우마이야 왕조는 걷잡을 수 없는 쇠퇴의 길로 들어서 마그레브의 함무드 왕조에게 코르도바를 내주게 된다. 함무드 왕조[4]와 내전을 벌이는 동안 더더욱 쇠약해져 1031년 마지막 칼리파 히샴 3세가 퇴위당하며 멸망한다. 히샴 3세도 또다른 타이파가 됐다가 1035년 사망한다. 히샴 3세가 히샴 2세 이후 제일 오래 재위(5년)했던 건 개그…

[1] 모바일로 볼 때에 세로로 그냥 보면 아랍어가 헷갈려 보이므로 거로로 눞혀서 보는 것을 권장하는 바이다. 두줄 이상의 아랍어 문장/이름이면 다 해당되는 룰.. PC 면 상관 없다.[2] 독일의 동방식민운동 과정에서 상당수의 스클라베니족 전쟁포로들이 사로잡히는데, 당시 이들은 기독교화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같은 기독교인들을 노예로 삼아 이교도에게 팔면 안된다는 사회적 금기와는 상관이 없었고, 결국 프라하베르됭을 거쳐 후우마이야 왕조로 수출되었다.[3] 무함마드 2세를 죽이고 칼리파가 된 무함마드의 사촌 쉴레이만[4] 후에 타이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