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공화국의 기벨린 지도자 중 한 명으로, 1338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에 의해 고용된 뒤 40척의 갤리선을 지휘했으며, 1339년 프랑스 제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도버 해협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해 잉글랜드 수송선들을 격침하고 잉글랜드 해안을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 참전했으나 전사했다. 프랑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이자 계보학자 피에르 기부르는 <프랑스 가문의 기본 역사>에서 그는 '아이톤 도리아(Aithon Doria)'라고 칭하기도 했다.